범초 홍성렬 교수님의 약력_신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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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22:52 조회6,488회 댓글0건본문
1. 충남 목천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
--충남 천안군 목천면 신계리(현 독립기념관부지)7의 3번지에서 출생
--농사짓는 부친 洪万杓, 모친 金洪玉씨의 5남 1녀중 4남
--을해(1935)년 3월 15일(음력 2월 11일) 생
--본관 남양, 본명 性烈, 자 農溪 호 凡草
2. 착한 성품에 시를 좋아한 소년시절
--양순하여 어려서부터 부모의 말씀을 어긴 일이 없고 형제간에 다툰 일이 없는 착한 성품, 내성적이어서 말수가 적고 독서하기를 좋아함
--학업이 우수하여 목천국민하교 3학년때에 4학년으로 월반
--4학년때 학교 문예지에 ‘고을’이라는 동여를 내어 유명한 시인 박윤선생의 칭찬을 받음, 이 해 가을에 천안군청에서 세금에 관한 어린이 문예작품을 모아 시상할 때 입선 이후 시인이 되려는 꿈을 가지다
--1949년 3월 천안중학에 입학, 이해 가을 부모를 따라 증산교에 입교 봉청수(奉淸水) 하고 기도, 송주(誦呪)하는 증산교의 신행(信行)을 시작
3. 흙내음 속에 살아온 고교시절과 독립의지 다졌던 대학시절
--1952년 4월 1일 천안농고 원예과에 입학 점심도시락에 비지가 섞일정도로 빈한, 학교에서 과수가지 자르고 똥통지는 일 익히며 집에서는 지게질 잘하는 학생으로 동리에 소문이 남
--고3때 모친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충격을 받고 2학기를 번민속에 지내다 병을 얻어 고생
--55년 4월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수학과에 입학, 집안을 돕고 학비조달을 위해 공주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얻어 3년간 운영, 세상 물정 체험하며 독립의지를 다짐
4. 작은 일에도 정성들이며 살아온 교육자의 삶
--1959년 11월 대학졸업후 모교 천안농고 교사에 임함
--1961년 3월 군입대 교사병역특례법에 의해 1년후 제대
--1961년 5월 면천농고 교사에 임함
--1962년 2월 예산농고 교사에 임함
--1967년 4월 예산농전 교수에 임함
--1981 2월 이학석사(건국대학교 대학원) 받음
--1081년 3월 예산농전 학교신문주간에 임함
--1990년 4월 예산농전 도서관장에 임함
--1992년 7월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교수에 임함
5. 끊임없는 저술과 증산종단 창명운동에 헌신
--33세(1967) 5월 증산교리 100문 100답 간행
--35세(1969) 6월 예산자택에 22평의 교당 건립
--36세(1970) 12월 증산신도친목회 창립에 참여
--37세(1971) 3월 증산종단개론 간행
--37세(1971) 5월 증산종단 각교단을 순방 슬라이드 500매 제작
--38세(1972) 12월 증산교 제3대 종령에 피선
--39세(1973) 3월 수부론 간행
--40세(1974) 3월 증산사상연구회 창립에 참여 초대간사
--41세(1975) 1월 증산종단연합회 창립에 참여
--43세(1977) 1월 증산교단공통교리 성안을 위한 공청회 개최
--45세(1979) 12월 증산교 제5대 종렬에 피선
--48세(1982) 7월 증산교 개설 간행
--51세(1985) 5월 범증산교연구원 개설
--55세(1988) 2월 범증산교사 간행
--55세(1988) 10월 월간 천지공사 발간, 10여년 넘게 발간함
--56세(1989) 12월 증산교 11대 종령에 피선
--58세(1992) 8월 증산종단의 새 기틀을 여는 공청회 개최
--60세(1994) 11월 증산종단연합회 추계총회에서 회장에 피선
--61세(1995) 3월 회갑기념 시문집 ‘상생의 도를 생각하며’ 발간
7. 한국민족종교간의 교류 증진과 발전에 기여
--1981년 8월 29일 민족종교종교인친목회 창립에 참석
--1985년 11월 16일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에 참여
--1987년 3월 1일 한국민족종교협의회에서 ‘삼일운동과 민족종교’라는 논제로 강연
--1987년 6월 24일 한국민족종교 학술발표회의에서 ‘증산교에서 본 한민족의 진리와 과제’라는 논제로 강연
--1989년 12월 22일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부회장
--1993년 12월 16일 제8차 민족종교지도자 대회에서 ‘사회개혁과 민족종교의 역할’이라는 논제로 강연
--1994년 11월 29일 제9차 민족종교지도자 대회에서 ‘민족종교의 도덕관으로 난국수습할수 있다’라는 논제로 강연
--2001년 10월 25일 모 교단 신도들에 의해 피살되어 순교하심(옮긴이 작성)
가족관계
사모님 鄭 分 여사님 사이에서 1녀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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