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도를 생각하며(범초 선생 서문)_신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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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22:42 조회6,398회 댓글0건본문
상생의 도를 생각하며(범초 선생 서문)
다음 글은 홍범초 선생께서 1995년 회갑을 맞아 발간한 시문집 ‘相生의 道를 생각하며’ 에 쓰신 서문입니다. 저는 서문에 담긴 내용보다 서문의 바탕에 흐르는 범초 선생님의 겸양(謙讓) 가득한 마음을 느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당신의 호를 범초(凡草)라고 하셨습니다. 범(凡)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만 보통(普通)이다 평범(平凡)하다의 의미를 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범초凡草란 우리 대한 강토의 산야에서 흔히 보는 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곧 보통 백성, 보통 사람, 평민(平民)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선생께서 자호(自號)를 그렇게 지으신 것은 당신님의 심중을 반영하신 것으로 일평생 이루시려는 사상과 철학, 인생 방향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귀족주의, 특권주의, 황족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이며, 서민 백성과 함께 하려는 지극히 순박(淳朴)한 사랑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범초 선생의 호에 담겨있는 의미가 증산 상제님의 한평생 삶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은 언제나 서민 음식을 드셨고, 서민 옷을 입으셨으며, 서민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시고 높으신 옥황상제 이셨지만, 기와집에서 사시지 않았고, 가죽신을 신지 않으셨으며, 가마나 말을 타고 다니시지 않으셨습니다. 상제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천하창생, 보통백성, 다시 말해서 범초凡草가 있었던 것입니다. 상제님은 모든 사람이 다 잘 사는 세상, 상생의 세상을 만드시기 위하여 천지공사를 보셨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제님과 수부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曰草幕之家에 聖人이 出焉하노라. (이중성 천지개벽경 상제님 말씀)
왈초막지가 성인 출언
* 초막에서 성현이 나온다. (고민환 선정원경 수부님 말씀)
저는 이 글에서 홍범초 선생께서 성인(聖人)이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아닙니다. 다만 범초 선생님이 직접 쓰신 서문을 읽어보면서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범초 선생님의 겸손하고 순박한 마음을 여러 참신앙 회원들과 함께 느끼고자 함입니다.
自 序
내 본디 총명하지 못하여 시가(詩歌)나 문장(文章)에 뛰어나지 못하고 인생 노정(路程)에서 더러 피하지 못할 사정으로 쓴 시문(詩文)도 그것을 잘 모아 다듬어 놓아 두지 못하는 불출(不出)인지라 이렇게 문집(文集)이라는 책을 낸다는 것이 아무래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자연스럽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는가를 쓰지 않을 수 없어 자서의 펜을 들었다.
얘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내 나이 설흔셋되던 1967년 4월에 처음으로 대학강단에 서면서 나는 남모르게 심중(心中)에 결심한 바가 있었다. 하늘이 나에게 주신 시간을 둘로 쪼개어 하나는 전공한 학문의 연구에 쓰고 다른 하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우리의 신흥종교, 요사이는 한국의 민족종교라 불리우는 겨레의 종교를 연구하고 그 발전에 열정을 바쳐 보자는 심산(心算)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최소한 30년간 연구해 보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남다르게 연차적인 사업계획을 짤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기획은 한국민족종교의 제반(諸般) 자료를 모으되 먼저 내가 믿고 있는 증산교甑山敎부터 시작하여 모아지는대로 자료집을 간행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어 회갑을 맞는 금년에 들어서면서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특히 연차적으로 자료집 간행이라는 목표에는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오래전에 회갑기념으로 특별한 자료집을 내 보겠다는 구상(構想)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일에 밀리고 저일에 쫓겨서 어느 것 하나 추진하지 못하고 이 일을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 중에 이를 가까이서 안타깝게 지켜본 사람이 ‘다른 데서 구하지 말고 스스로 직접 지금까지 써서 남에게 준 글이나 발표한 것을 모아 한 구건으로 엮어 놓는 것도 후일 자료집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는 엉뚱한 제안을 받기에 이르렀다. 딴에 그렇기도 한 것 같았다. 내가 신봉하고 있는 종교가 민족종교의 하나인 증산교요 증산교와 협의체(協議體)를 구성하는 있는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이사직을 맡아 이런 저런 회합에 나가서 발표한 글들은 그게 후일 한국민족종교 연구의 어떤 자료가 될지도 모를 것이니 말이다. 애초에 내려고 했던 것은 증산종단의 가사집이었다. 그런데 차분하게 증산종단의 가사를 정리할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준 증산종단의 가사(歌詞)를 동학가사와 함께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이 있는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근자에 연구자들이 증산종단의 가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증산종단의 가사집을 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이번에 낸 문집이라는 것은 학덕(學德)을 갖춘 선인(先人)들이 간행한 문집과는 그 내용과 뜻이 전혀 다르다. 이글은 내가 대학강단에서의 느낌을 적은 수필같지 않은 수필과 시문같지 않는 시문들 모은 것이고 증산교의 연합운동에 참여하여 내 나름대로 느낀 엉성한 체험담과 민조종교의 위대성을 창명(彰明)해 보려는 민초의 서툰 글발이다. 증산 대성의 성훈에 ‘말은 마음의 소리요 일은 마음의 자위라’ 하셨다. 수신제가를 잘한 가장(家長)도 되지 못하는 터요, 대학에서는 변변한 교육자도 아니요, 수도(修道)가 철저한 도인(道人)도 못되는지라 내가 쓴 글이라는 것은 덜 닦여진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부끄러운 것들이다. 그래서 세상에 내놓을 것이 못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부끄러운 문집을 내 놓은 것은 옛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점을 책상머리에 적어놓고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며 자기를 경계(警戒)하였듯이 나도 이를 본받아 나를 경계하는 계잠(戒箴)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나의 글 모음을 이름하여 ‘상생의 도를 생각하며’ 로 한 것은 이모 저모를 생각해서 붙인 명칭이다. 증산 대성께서 ‘나의 도道는 상생相生의 큰 도道이니라’ 하시고 이를 구체적으로 설하사 ‘나의 세상에는 모든 나라가 상생하고, 억조창생이 상생하고, 남자와 여자가 상생하고, 강자와 약자가 상생하고, 가난뱅이와 부자가 상생하고, 귀한 이와 천한 이가 상생하여 만가지 덕이 하나로 돌아가서 크게 어질고 크게 의로운 세상이니라’ 하시니 오는 세상은 상생의 큰 도로써 도타운 사랑이 한없이 넘치고 생기고 퍼져서 덕을 이루는(자애양양慈愛洋洋 생생위덕生生爲德) 세계임을 알 수 있다.
나같이 아둔한 두뇌로써 어찌 대성께서 가르치신 상생의 큰 도를 깨우쳐 알 수 있으리오마는 다만 평범한 신도로써 그 가르침을 항상 생각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실천에 노력하여 내가 믿고 행하는 가운데 그 법리에 크게 위배됨이 없었으면 하는 염원(念願)을 책 이름에 담았다. 그리하여 내가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틈틈히 시간을 내어 어설프게 증산종단과 민족종교를 위해서 한 일들이 종단과 교단 간에 조금이라도 상생이 되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한국 종교계와 전세계종교계에 그 여음(餘音)이 미쳤으면 하는 신념이 이 문집을 내 놓은 마음에 깔려 있다.
성경현전(聖經賢傳)의 한 구절도 깊이 알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인생의 참 뜻을 말할 수 있으리오마는 회갑을 맞는 이 마당에 마음속에 솟구치는 것은 감사한 마음 뿐이다. 오늘이 내가 여기 있기까지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우애(友愛)로써 보살펴주신 형제와 일가친척,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이끌어주신 많은 스승님과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웃음을 머금고 뒷바라지를 마다 않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에게 늘 따뜻한 대해준 직장의 동료, 광제창생의 큰 뜻으로 협동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교계의 도인(道人)들과 대덕(大德), 학연의 선후배와 제자라는 정의(情誼)로 다정하게 감싸주는 이루 헤일수 없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 어떻게 하면 그분들에게 입은 은혜의 몇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나는 은혜라는 날줄과 씨줄의 교차점에 서 있다는 성구(聖句)를 생각해 본다.
특히 바쁘신 가운데 금쪽같은 귀한 시간을 내이서 격(格)에 어울리지도 않는 문집간행에 송축(頌祝)의 서예와 시문을 보내주신 도현(道賢), 대덕(大德), 석학(碩學)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謝意)를 표하며 또한 이 문집 간행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제현(諸賢)께 깊은 감사을 드리는 바이다.
을해(단시 4328년, 서기 1995년) 2월 21일 凡草 씀
다음은 스캔한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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