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일꾼/한겨레 신문--홍성렬 교수부부 피살사건 다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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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나무 작성일13-12-12 18:18 조회6,633회 댓글0건본문
혹 댓글 달 때에 특정교단 혹은 인물을 뜻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둘러 표현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증산참신앙은 과거의 사실을 비판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제님 일을 인사로 성취하는 미래의 일, 성사재인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를 결코 잊지 않는 것은 두말한 나위가 없습니다. 상제님 일을 반드시 됩니다. 정의로운 방법으로 반드시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상제님 천지사업은 불의를 숙청하고 정의를 규명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범인을 잡기까지 9년이 걸렸다. 쪽지문을 채취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지문 소유자가 검거된 뒤, 공범 두 명도 연이어 체포됐다. 사건의 주범들은 증산교도였으나, 교단은 “우리 교단 사람이 아니다”라고 꼬리를 잘랐다. 그들은 ‘언젠가는 교단이 다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2010년 4월13일치 <에스비에스> 화면 갈무리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9> 홍성렬 교수 피살사건
증산교 대가 홍 교수 부부가 의문의 살인을 당했다
유일한 증거는 머리카락·쪽지문
그러나 당시 과학기술로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9년 걸려 찾아낸 범인은 세명
‘근거없이 교단 비판한다’며
행정실장의 지시같은 부탁에
얼굴도 모르는 노부부 죽인 범인
범인은 독실한 증산교인이었다
2001년 10월25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시골 마을에 위치한 전 공주대학교 수학과 교수 홍성렬(당시 66살)씨 부부의 주택은 늦은 가을밤의 고요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3명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더니 홍 교수의 머리를 향해 무엇인가를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홍 교수가 쓰러졌다. 이상한 소리에 방에서 나온 홍 교수의 부인(당시 62살)에게도 괴한의 잔인한 공격이 가해졌다. 괴한들은 바닥에 쓰러진 노부부에게 마구 폭행을 가했다. ‘확인 살인’이었다. 금품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들킨 절도범이나, 피해자들을 폭행하고 위협해 귀중품을 탈취하려는 강도의 소행은 아니었다. 탈취된 금품도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노부부를 ‘반드시 살해하겠다’는 확실한 목적 아래 행해진 범행이었다.
2010년 4월13일치 <에스비에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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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과 협박에 계속 시달렸던 홍 교수
피해자 홍성렬(홍범초) 교수는 전공인 수학보다 동학이나 증산교 등 ‘민족종교’ 분야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특히 <증산교 개설>, <범증산교사> 등의 책을 저술했고 <천지공사>라는 증산교 교리를 전파하는 월간지를 10여년 동안 발행해 왔으며 증산종단연합회장 및 증산사상연구회장을 역임하는 등 ‘증산교’ 분야의 대가였다. 어떤 증산사상 관련 교단과 교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어 왔던 홍 교수는 자신의 집에 독자적인 예배당을 차려놓고 지지자들과 따로 예배를 드리며 교단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증산교는 구한말 절망에 빠진 농민과 백정, 여성 등 기층 민중들을 위한 세상을 만든다며 ‘후천개벽’을 약속한 증산 강일순(1871~1909)을 상제로 받들어 모시는 종교다. 일제강점기 탄압으로 해체되었다가 광복 이후 증산교, 증*도, 선도교, 보천교, 미륵불교, 제화교, 태을교 및 대순진리회 등 수십개의 독립교단이 난맥상을 이루며 창설되어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던 중이었다. 홍 교수는 현재의 증산교 계열 교단들이 교조인 강증산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기복신앙적인 ‘혹세무민’으로 교세 확장과 수익만 챙기고 있다고 비판하며 자신의 집을 작은 교당으로 꾸민 채 방문객을 맞이하며 설교를 하고 예배를 봉헌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홍 교수에 대한 위협과 협박이 끊이질 않았고 사건 다음날 사위가 협박전화 발신지를 표시하는 장치를 구입해 설치하려고 찾아갔다가 시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보존부터 철저를 기했다. 피해자가 지역 유명인사이면서 종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대형 의혹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곧 도착한 과학수사반은 현장에 대한 면밀한 감식을 실시했다. 꼼꼼하게 증거를 인멸한 뒤라서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50여 점의 머리카락을 수거했고 방바닥과 음료수 병 및 방명록 책갈피에서 쪽지문(손가락 일부만 접촉해 부분적으로 남겨진 지문)을 채취해 낼 수 있었다. 특히, 방명록에서 사건 발생 당일 방문자들의 기록이 남겨진 부분만 찢겨 나갔고 그 부분에서 어렵게 쪽지문을 채취해 냈기 때문에 경찰은 신원 확인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의 지문검색 장비는 쪽지문만으로는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DB) 안에 있는 지문 원본과의 일치율을 판독해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현장에서 수거한 머리카락 중에서 유전자(DNA)를 추출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디엔에이의 주인이 반드시 범인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머리카락은 지문과 달리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는 한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일단 피해자 홍 교수 부부와 가족 등 가까운 지인 중에는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의 디엔에이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해자들의 지인 외에도 이웃, 인근 거주 불량배나 전과자 등 우범자들과 최근 홍 교수의 집과 예배당을 찾은 사람들, 배달이나 검침, 외판 등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모발의 디엔에이와 일치하거나 혐의점이 있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강도높은 수사 받던 행정실장의 자살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열흘이 넘도록 사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종교 관련 학자들과 학회, 충남지역 교수 및 학자들이 경찰에 항의서한을 제출하고 사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을 하기도 하는 등 여론의 압박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기만 했다. 학계와 여론의 의혹은 한 증산교 관련 교단을 향해 있었다. 경찰 역시 ‘의혹과 심증’을 따라 교단에 대한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했지만 물증이나 진술,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2002년 교주의 심복으로 평소 홍 교수를 ‘교단의 적’으로 지칭하며 공격적 발언을 해온 탓에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던 교단 행정실장이 자살하는 바람에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9년 뒤인 2010년.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었지만 인류의 과학기술은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과학수사 장비와 기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경찰청이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추진한 ‘지문 자동검색기 고도화 사업’으로 개선된 장비와 기술은 9년 전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던 쪽지문의 ‘보이지 않는 융선’ 부분을 추정, 복원해 내었다. 복원된 지문과 일치율이 가장 높은 데이터베이스 속 지문의 소유자는 이아무개(당시 38살)씨. 쪽지문에서 추정 복원해 찾아낸 대상이기 때문에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의 소유자일 가능성은 높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모발에서 추출된 디엔에이와의 일치 여부, 사건 당일 알리바이, 동기 등 추가로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았다.
경찰은 이씨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2010년 3월16일, 경기도 안성의 한 피시방에 있는 그를 발견했다. 장시간 그의 동태를 감시하던 예산경찰서 강력팀 김응선 형사는 이씨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 뒤 자리를 뜨자 신속하게 꽁초를 수거해 비닐 증거봉투에 담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꽁초에 묻은 타액의 디엔에이가 9년 전 홍 교수 부부 피살 현장에서 수거된 모발 중 하나의 디엔에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곧 검거되었고 공범인 장아무개(당시 50살), 심아무개(당시 48살)씨 역시 체포되었다. 세 사람은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문제는 ‘범행 동기’와 ‘배후’였다. 세 사람 모두 피해자 홍 교수 부부와는 아무 관계나 면식이 없어 원한이나 금품, 치정 등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세 사람 모두 증산교 관련 교단 소속 교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장씨와 이씨는 동네 선후배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지만 심씨는 같은 교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과 관계가 없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 분석관)까지 투입하며 교단 혹은 교단 관계자와의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사의 끝은 자살한 행정실장에게서 멈추고야 말았다. 수사 결과 밝혀진 사실은, 행정실장이 지위도 별다른 역할도 없던 평신도인 장씨와 심씨를 각각 따로 불러 홍 교수가 근거 없이 교단을 비방하고 감언이설로 교인들을 빼가 교단이 곤란한 상황이니 홍 교수를 처단해주면 좋겠다는 ‘지시 같은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별도의 지시를 받은 사실을 모른 채 각기 홍 교수 집 부근을 배회하며 기회를 엿보다 같은 지시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이제까지 누구를 해쳐 본 적이 없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논쟁하던 끝에 폭력 전과가 있고 공격적인 성격인 동네 후배 이씨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세 사람은 치밀하게 공격 계획을 세웠고 석 달에 걸쳐 홍 교수를 추종하는 교인을 가장해 홍 교수의 집에 대한 사전답사를 실시해 요일별 및 시간대별 방문자 현황과 홍 교수 부부의 생활패턴 및 집안 구조를 파악했다.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시 이행을 하지 않는다는 교단 행정실장의 추궁과 재촉이 몇차례 있었다.
디데이로 잡은 2001년 10월25일 저녁, 방문객이 모두 돌아가고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것을 확신한 세 사람은 홍 교수 부부를 습격해 잔혹하게 살해하고 증거를 없앤 뒤 교단 행정실장을 찾아가 보고를 했다. 행정실장은 감사인사를 하고는, 도주해 몸을 숨기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교단 쪽으로는 발길도 돌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지시에 따라 잠적했고, 교단에서는 오랫동안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인명부에서 세 사람의 이름을 삭제했다. 경찰의 수사가 교단 내부를 향해 강도 높게 진행되던 2002년 행정실장은 자살했고 그와 세 사람 간의 연결고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2010년 4월13일치 <에스비에스> 화면 갈무리
“교단과 관계없다” 강하게 선 그은 범인들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라는 책에서 이슬람교와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시아파 지도자 호메이니 등 강경파 원리주의 이슬람교파로부터 ‘공개 살인 명령(fatwa, 파트와)’을 받았고 그를 살해하는 사람에게는 300만달러의 공개 보상금이 걸렸다. 루슈디는 영국 정부의 보호하에 아직 무사하지만, 그의 책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일본 학자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종교 교단의 미움을 받아 살해 명령의 대상이 된 홍성렬 교수의 사례는 비록 그 명령이 비공개, 비밀 지시이긴 했지만 ‘한국의 살만 루슈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성렬 교수에 대한 ‘종교 테러 살인’ 사건의 주범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에 다른 사람과 싸움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농촌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에 취업했고 공장 동료 여성과 결혼해 살다가 연로한 부모님의 치매 등 병치레로 고생하던 끝에 아내마저 병에 걸려 수술을 하는 바람에 회사도 그만두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삶이 너무 힘들고 팍팍했다. 그때 친구의 소개로 <개벽>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증산교 관련 교단을 찾게 된 것이다. 교단에서는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환대해 주었고 존중해 주었다. 학력과 돈, 배경이 없다고 무시하던 ‘바깥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더구나, 동네 후배 등 다른 사람을 데려오니 호칭도 달라지고 보상을 하고 더 나은 대접을 해주는 ‘다단계’ 방식에도 푹 빠져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선교를 했다. 생활고와 부모 병수발도 제쳐두고 종교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말리다 지친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부부는 협의이혼을 하게 된다. 남자는 이혼 후에 더 깊이 종교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참에 행정실장의 살인 지시를 받자, 부모나 가정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교단과 교주를 위해 주저없이 살인 지시를 이행한 것이다.
이미 행정실장의 자살로 책임을 벗은 교단은 세 사람의 살인범을 교단에서 축출한 뒤 ‘우리 교단 사람이 아니며 교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꼬리를 잘라버렸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살인범들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살인 지시를 내린 행정실장이 홍 교수에 대한 감정과 교주에 대한 충성이 지나쳐 ‘개인적으로’ 내린 지시이지 결코 교단이나 교주와는 관련이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또한 살인사건 이후 이미 9년간 교단을 떠나 있고 교단에서도 파문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교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교단을 끝까지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교단이 다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교단 때문에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두 사람의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고 그 때문에 살인범이 되어 9년간 도피 생활을 해야 했고, 인생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교단에 대한 신앙과 충성심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종교적 광신의 무서움이 느껴졌다. 종교는 우리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귀한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오용 혹은 남용되면 중독과 부작용을 낳는 마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사 원본은 다음 주소에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2454.html
조화봉님의 댓글
조화봉 13-09-07 21:28 댓글상단기사 내용가운데 다음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라는 책에서 이슬람교와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시아파 지도자 호메이니 등 강경파 원리주의 이슬람교파로부터 ‘공개 살인 명령(fatwa, 파트와)’을 받았고 그를 살해하는 사람에게는 300만달러의 공개 보상금이 걸렸다. 루슈디는 영국 정부의 보호하에 아직 무사하지만, 그의 책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일본 학자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종교 교단의 미움을 받아 살해 명령의 대상이 된 홍성렬 교수의 사례는 비록 그 명령이 비공개, 비밀 지시이긴 했지만 ‘한국의 살만 루슈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사 보도자는 [종교 교단의 미움을 받아 살해 명령의 대상이 된 홍성렬교수]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 명령이 비공개 비밀 지시]라는 표현도 했습니다. 살해명령이란 위선에서 아래선으로 살해행동지침을 하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살해명령을 누가 내렸을까요? 살해 명령을 내린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자살한 행정실장이란 분은 결코 살해 명령의 최종지시자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사보도자도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지않나 생각되는군요
증산상제님의 진리는 천지신명이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환히 내려다 보는 신명계의 도, 다시말해 신도라고 합니다. 대대세세를 천지귀신이 수찰이라~~빨리 살해 명령을 내린자는 하루빨리 자수하여 천지광명을 찾기 바랍니다. 안록산은 100년에 한번씩 심문을 받는 벌을 받고 있습니다.혹시 그게 당신의 일을 미리 말씀하신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솔가리님의 댓글
솔가리 13-09-07 21:35 댓글상단홍범초 교수님 부부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아라사군사 13-09-07 21:45 댓글상단종교는 인간성 회복의 치유제가 돼야는데 저런 경우는 완전히 아편이 된 사례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누구 말 대로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제님 진리는 천하의 도적놈들을 다 잡아들여 세상을 맑히는 진리입니다.
우리 증산참신앙은 교운사의 모든 올바른 것과 거짓된 것을 모두 드러내 세상을 맑히는데 앞장서야 겠습니다.
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아라사군사 13-09-07 21:49 댓글상단홍범초 선생 부부의 명복을 빌며 악의 집단이 종말을 맞는 걸 하늘에서나마 보시게 될 겁니다.
푸른글님의 댓글
푸른글 13-09-07 22:06 댓글상단홍교수 부부가 살해될 당시는 2개의 종단(대순과 증*도)이 급격히 교세를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그중 대순은 <불고가사>와 <개벽>을 앞세워 기존 신도들에게 성금을 많이 받아내는데 치중하여 종단의 사업을 위한 건물을 짓는 외형적 확장에 치중하는 시기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때였고, 증*도는 그런 대순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여 어부지리를 얻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2개의 교단을 문제점을 이미 예상한 많은 제3의 증산사상 연구자들에게 홍교수님은 수많은 증산교단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증산사상 연구의 귀감이 되는 가장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증산사상 연구가들은 홍교수님의 한 종단에 치우치지 않은 연구서를 기본텍스트로 삼았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묻혀있던던 수많은 자료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홍교수님 부부 살해이후 증산사상 연구자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추고 혼자서 숨어 증산사상을 연구하는 은둔의 연구자들이 되고맙니다..
그것은 그 살인사건의 주범이 어느 종단의 사주를 받아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증산사상 연구자들은 이미 알고있었기 때문입니다.(특정 증산종단 내에 기독교처럼 이단을 척결하는 행동대를 두고있다는 소문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으니까요..증산 종단내 기독교 방식으로 교전을 서술한 종단은 단 하나입니다.)
이후 그동안 증산사상을 활발히 연구하던 연구자들은 모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은둔하고 증산사상 연구는 암흑기로 접어듭니다..그 결과 어설픈 주역의 지식으로 상제님 사상을 아전인수격으로 자기네 교파에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대두목 파>들과 정감록 격암유록 같은 비결서를 바탕으로 하여 개벽을 주장하는 <종말론 파>들이 증산사상 연구의 주류로 등장하게 됩니다..
모 교단의 홍교수님 살해사건은 간단히 홍교수님의 죽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열성적인 수많은 증산사상 연구자들을 은둔하여 침묵하게 만들려는 군대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시범케이스 살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홍교수님의 살인사건을 본다면 증*도 도전의 편찬과정은 증산사상연구자들의 학문적 연구성과를 모두 침묵하게 한 후 자신들의 연맥에 맞게 상제님 성언을 하나하나 날조해가는 엄청난 난법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증*도의 도전은 증산교단에서 발행된 책 중 가장 객관적인 신빙성이 낮은 책으로 보고있습니다..지금도 이곳에 계신 수많은 분들이 그 책의 구절들을 인용해 무엇이 진정 참신앙인가를 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면서도..그 역시 겪어야 할 과정으로 보고 파사현정의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상제님 도법은 열심히 공부하시다 보면 자연알게 될 것이므로.. 이만 줄입니다..
노들님의 댓글
노들 13-09-07 22:24 댓글상단뉴스자막이나, 신문 지면에 나온 "" 증산교""라는 단어를 들어,
홍교수가 몸담고 있던 용화동의 증산교 내부의 종정자리를 놓고 서열다툼으로 자기들끼리 죽였다라고 호도하며, 대전의 0ㅅ道의 그들은 일반인이나 순진한 신도들에게는 자신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살해하지도 않았다라고 호도하던때가 엇그제 같네요.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위해 "실명"을 밝히면
자신들이 저지른 진실을 숨기기위해 명예훼손으로 벌금 물리게 하고, 사이트 폐쇄나 이용 정지처분 내리게하고....
만약 참신앙이나 ㄷ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증산교 내부의 종정자리를 두고 서열다툼""으로 인식하여,
제가 죽을때까지 용화동에 있는 증산교를 욕하고 있었을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끔찍하네요.
살인자인 oㅅ道와 피해자인 증산교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과 땅차이.
누런장닭님의 댓글
누런장닭 13-09-07 22:40 댓글상단첨으로 댓글씁니다. 홍교수님부부살해는 신흥종교집단의 광신과 맹신의 결과입니다.당시 교주를 상제님보다 더 높은 대두목으로 믿는 광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습니다. 대두목을 도통줄 어른이며 개벽기 인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인존절대자로 믿는 그릇된 대두목신앙에서 반대파를 살인해도 개벽이후 구제됨은 물론 큰상을 받는다는 광신과 오신이 나온것이라고 생각합니다.종교신앙에서 교주 혹은 그에 준하는 자의 직간접적인 살해암시가 없었다면 결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은 나올수 없습니다.
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아라사군사 13-09-07 23:32 댓글상단세운으로 말하자면 김구, 장준하 선생의 암살에 비견될 사건이 홍교수 부부 암살 사건입니다. 김구(김구 죽인 사람은 안 머시기라는 사람이죠), 장준하 선생 암살사건이 대한민국의 정통성문제와 관련된 사건이라면 홍교수 부부 암살사건은 상제님 진리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홍교수 부부를 암살한 흉악한 배후는 떨고 있을 것이며 머지않아 천지에서 주멸할 것입니다.
태을친구님의 댓글
태을친구 13-09-08 19:52 댓글상단오늘 다음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에 기사가 올라왔네요ㆍ온통 인터넷이 표창원 교수관련 기사입니다ᆢ 이시점이 이 사건이 재이슈가 되는것이 ᆢ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군요ㆍ향후 교운에서 새로운 파장이 일어날것같군요ᆢ
아라사군사님의 댓글
아라사군사 13-09-08 20:03 댓글상단천지의 심판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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