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호롱불(펌)4_다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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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12-09 14:28 조회7,163회 댓글2건본문
다스칼작성일13-06-28 07:06조회154회 댓글1건
필자는 어머니를 만나보고 나서
숙명(宿命)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부부(夫婦), 부모(父母), 자식(子息).
이 관계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로 맺어지는 관계는 서로의 선택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 같지만,
외견상(外見上) 그럴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지방에서 저지방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숙명(宿命)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다니는 것이다.
제짝을 찾기 위한 행로라고 할 수가 있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면 필자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왜 부부(夫婦)로 맺어 졌을까?
그것은 업(業)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는 자명해진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이해하고 용서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한다.
저절로 그냥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노력해야만 한다.
예수께서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면서 하늘을 섬기는 것 보다 오히려 더 우위에 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 용서와 사랑을 가르친 중요한 이유는 용서와 사랑만이 개인의 업을 해소하고 천국 쪽으로 한발 다가 설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방법이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용서와 사랑이란 것은 부처님의 자비심(慈悲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일부 기독교인들이 사람들이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예수께서 가르친 용서와 사랑은 인간이 그 대상이지만, 자비심은 인간을 초월하여 초목까지 그 대상이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어쩌자고 석가보다 좁은 범위를 선택하여 주셨는가?
그것은 아마 유대민족의 정신적인 낙후(동양에 비해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이 퍼져나갈 경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를 배려한 처사인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석가와 예수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네 기독교인들은 이해(利害)에 따라 선별하여 사랑하고,
그 사랑마저도 변질시켜버렸다.
과연 누가 그 주역일까?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알 일이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면 파탄이 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을 한(恨) 맺히게 만든다.
한은 또 다시 업으로 남는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그 안에서 다시 잘못을 저질러 형량이 늘어나는 것과 닮은꼴이다.
당신은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러면 이미 부부로 맺어진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답은 이미 알려져 있다.
세상의 부부(夫婦)들이여 이점을 잊지 마라.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에서 보면 "명부에 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하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명부(冥府)"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사전(辭典)에 의하면 명부란 “사람이 죽어서 가야 할 곳”, 또는 “사람이 죽어서 심판을 받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부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煉獄)에 해당되는 곳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구천을 떠돈다."는 말의 의미는
사람이 죽어서 가야 할 당연한 길을 거부하고 죽은 자의 세상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헤매는 행위를 말한다. 그들(죽은 자)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정상적인 행로는 아니다.
유체 이탈 후 처음 맞이하는 장소는 내 집, 내 방이지만, 거기서 또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은 자의 길을 거부하고 있는 망령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탈 후 내가 속한 세상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죽은 자의 세계다.
왜 그럴까? 왜 현실이 아닐까?
음신이탈은 자신이 죽은 것과 같은 상태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이탈과 동시에 죽은 세계에 편입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세상과 모양이 같아서 현실로 착각하기 쉽다. 필자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독자 여러분께서는 절대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명부에 들기를 거부하는 어리석은 혼령들과의 대화도 거의 불가능하니 혈연관계가 있다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명부는 어디 있는가?
현세와 같은 모양의 죽은 자의 세상으로부터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명부라고 일컫는 곳도 다양한 모양의 넓은 세상이다.
사람들이 죽어서 제 갈 길로 갔으면 대부분 여기에 있다.
먼저 간 혈연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곳곳에 명부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가 있다.
수 없이 방문해 보았는데, 산 중턱쯤에 작은 집이 있고, 죽은 뒤 누구든지 그 집으로 찾아가야만 한다.
어느 산이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 아주 많이 산재해있다.
그리고 그 집들은 모두 "예수"께서 관장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이탈 후 그곳에서 그분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87년이던가, 그곳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필자가 물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은 사후에 하늘에 올라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있다고 말하고 있거나 화려하고 웅장한 옥좌에 앉아 계신다고 하던데 어찌하여 제일 낮고, 어둡고 침침한 이런 곳에서 죽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증거 하기 위해서 그렇다. "
"무엇을 증거 하기 위해서 입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한 말이 있지 않느냐."
그 후 수십 차례 그분을 만나서 얘기도 했고, 불평불만도 털어 보았고, 울면서 하소연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분명하게 안 것은 결코 그분은 인간사에 직접 참견을 하지 않는다는 것- 즉 그분은 인간에게 길흉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수천 년 동안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며,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몰지각한 예수쟁이들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악선전처럼 지옥에 빠지지 않는다.
그분은 누구든지 환영하고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살았을 때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가는 자신 스스로 치르게 된다.
목자의 탈을 쓰고 신도들을 오해와 편견으로 몰아간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그런 인간들에게 현혹되었던 사람들도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만 한다.
이러한 법칙은 현세의 법칙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자신이 저지른 무게만큼 대가를 치르고 난 다음에 다시 기회를 준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환생(幻生)이다.
예수의 부활은 환생을 의미한다.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나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인간들은 똑같은 법칙아래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종교, 종파, 인종을 뛰어 넘는다.
선택받은 민족도, 선택받은 종교도 없다.
모든 인류가 같은 법칙아래 다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신은 참으로 공평한 분이다.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나 죄를 짓든, 선행을 하든,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다.
그래서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세상에서 맺은 것은 하늘에서도 맺고, 너희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푼다."
이탈을 한 후에 맞게 되는 <죽은 자의 세계>를 벗어나 더
높은 곳은 자신의 염이 상당히 강해야만 가 볼 수 있다.
명부(冥府)에 해당되는 곳은 별로 어렵지 않게 가볼 수 있으나
천국이라고 하는 곳은 내 힘만으로는 갈 수 없었다.
집중하여 노력하다보면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데려다 주었다.
그곳은 명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평안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인물을 만나거나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가치 기준으로 인간들의 사후상태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다.
이승에서 그럴듯해 보이던 사람도 사후에는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 할 수도 있다.
학식과 신망이 두터워 존경받던 인물이나, 신앙심이 대단해 보이거나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던 종교 지도자였던 인물도 의외로 낮은 곳에서 고생하고 있거나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50년대에서부터 꽤나 유명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하가 되었으며, 스스로 우상화시켰던 인물이 있었다.
P씨는 아주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종파를 부흥시키고, 엄청나게 교세를 확장했다.
한때에는 엄청난 재물과 기업과 사람들을 거느린 대단한 인물이었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송두리째 바치고 스스로 그의 교도가 되어 자신과 가족의 장래를 망쳐 버렸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그는 죽었고, 그의 교회도 서서히 무너져 지금은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이탈 중 우연히 그를 보았다.
기독교적 논리로는 그는 죽어 천국에 가 있거나, 지옥으로 떨어져야 했다.
그를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사후에는 하느님 옆자리쯤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그에게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뛰쳐나온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유황불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본 사실은 둘 다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사실을 왜곡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파견된 인물이었거나, 어떤 연유로 그쪽의 세력과 결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어서도 생전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나쁜 길로 빠져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이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모두 같은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어둠의 세력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타고난 악인, 구제불능의 악인으로 출생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고정된 시각으로 인간을 보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보통의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만한 분별력이 없으며,
선과 악은 힘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 힘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계속)
댓글목록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그는 애초부터 사실을 왜곡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파견된 인물이었거나, 어떤 연유로 그쪽의 세력과 결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어서도 생전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모교단의 두 명의 지도자를 설명하는 문구같습니다려.
참님의 댓글
참 작성일
재밌어요
새로운관점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