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문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바로 진실한 자리를 요달하여 낱낱이 자기의 본성에 나아가 본 종지에 계합하면 곧 스승 없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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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강산주 작성일14-01-01 17:53 조회7,877회 댓글6건본문
아직까지 이글을 접하지 못한분들께........부디 마음닦는데 도움이 돼시길 바라며....
-------- ; 修 心 訣 ( 수심결 ) ----------
* 대승심을 발한 이들께, 최상승심을 발한 이들께 ; 금강경 가운데 내지 사귀게를 ..................
*가운데 ; 마음이 주하는 바가 있으면 참으로 주함이 아닐지니
*사귀게 ;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 ....... 오방내외 안위 제신 진언
: ....... 나무 사만다 못다남
: .......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1.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화택과 같거늘 거기에 참아 오래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으랴. 윤회함을 면하고자 할진대 부처를 구함만 같지 못하고 만일 부처를 구하고자 할진대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 찾으리오 각자의 몸 가운데를 여의지 아니 하였도다. 색신은 이 거짓이라 생함도 있고 멸함도 있거니와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변하지도 아니하나니라. 그런고로 “일백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되 한 물건은 길이 영령하여 하늘도 덮고 땅도 덮었다”하였나니라.
2. 슬프다 이 세상 사람들이여 미하여 온 지가 오랜지라 자기의 마음이 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성품이 이 참 법인 줄을 알지 못하여 법을 구하고자 하되 멀리 모든 성현에게서 찾으며 부처를 구하고자 하되 자기의 마음을 관(觀)하지 아니하나니,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고 하여 굳게 이 뜻에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하는 이일진대 비록 티끌같은 겁(劫)을 지내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불사르며 뼈를 깨어 골수를 내며 피를 뽑아 경을 쓰며 길이 앉아 눕지 아니하며 일종을 행하며 내지 일대장교(一大藏敎)를 다 읽어서 가지가지의 고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괴로울 뿐이니 다만 자기의 마음만 알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수 없는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의지를 구하지 아니하여도 얻으리니 그런 고로 세존이 이르시되 “널리 일체 중생을 보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어 있다”하시고 또 이르시되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가 다 여래의 원각묘심에서 생한다”하시니, 이 알라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가히 이루지 못할지로다.
3.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만 이 마음을 밝힌 사람이며 현재의 모든 현성들도 또한 이 마음을 닦는 사람이며 미래에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이 법에 의지하여 수행할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이는 간절히 마음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이 물듦이 없어서 본래에 스스로 두렷이 이루었나니,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4. 묻되 「만일 불성이 현재 이 몸에 있다고 할진대 이미 몸 가운데 있는지라 범부를 여의지 아니하였거늘 무엇 때문에 나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하나이까. 다시 분명히 해석하여 하여금 다 깨치게 하소서.」대답하되 「네 몸 가운데 있건마는 네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도다. 네가 하루 열 두시 가운데 배고픈 줄도 알고 목마른 줄도 알며 추운 줄도 알고 더운 줄도 알며 혹 진심(瞋心)도 내고 혹 기뻐하기도 하는 것이 필경에 이 어떠한 물건인고. 또 이 색신이라 하는 것은 흙과 물과 바람 이 네 가지 인연의 모인 바라 그 바탕이 완특하여 정식(情識)이 없는 것이니 어찌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리오.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반드시 너의 불성이라 그런 고로 임제대사께서 이르시되 “사대가 능히 법을 설하고 법을 듣지 못하고 허공이 능히 법을 설하고 법을 듣지 못하되 다만 너의 눈 앞에 역력히 홀로 밝아서 형상할 수 없는 것이라야 비로소 법을 설할 줄도 알고 법을 들을 줄도 안다”하시니, 이른바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부처님의 법인이며 또한 이 너의 본래심이니라.
5. 곧 불성이 현재 네 몸에 있거늘 어찌 밖에서 구하리오. 네가 만일 믿지 아니할진대 옛 성현들의 입도한 인연을 대략 들어서 너로 하여금 의심을 제거하게 하리니 너는 마땅히 진실히 믿을지어다. 옛적에 이견 왕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어 가로되 “어떠한 것이 이 부처이오니까.” 존자 가로되 “견성을 하면 이 부처이옵나이다.” 왕이 가로되 “대사는 견성하셨나이까.” 존자 가로되 “나는 불성을 보았나이다.” 왕이 가로되 “성품이 어느 곳에 있나이까.” 존자 가로되 “작용하는 데 있나이다.” 왕이 가로되 “ 이 무엇이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에 보지 못하나이까.” 존자 가로되 “지금도 작용을 하건마는 왕이 스스로 보지 못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그러면 나에게도 있나이까,” 존자 가로되 “왕이 만일 작용을 하시면 불성 아님이 없거니와 왕이 만일 작용하지 않으시면 체(體)도 또한 보기가 어렵나이다.” 왕이 가로되 “작용할 때에 당해서는 몇 군데로 출현하나이까.” 존자 가로되 “만일 출현할 때에는 마땅히 여덟 군데가 있나이다.” 왕이 가로되 “그 여덟 군데로 나타나는 것을 마땅히 나를 위하여 설하소서.” 존자 가로되 “태중에 있을 때에는 몸이요 세상에 처할 때에는 사람이요 눈에 있어서는 보는 것이요 귀에 있어서는 듣는 것이요 코에 있어서는 냄새 맡는 것이요 혀에 있어서는 말하는 것이요 손에 있어서는 잡는 것이요 발에 있어서는 걸어 다니는 것으로서 펴 놓으면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은 세계에 가득 차고 거둬 들이면 한 미진 속에 들어가나니 아는 이는 이것을 불성이라 하고 모르는 이는 정혼(精魂)이라 하나이다.” 왕이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곧 열리었나니라. 또 어떠한 중이 귀종 화상에게 묻되 “무엇이 부처이오니까.” 귀종이 이르시되 “내가 지금 네게 일러 주고자 하나 네가 믿지 아니할까 염려하노라.” 중이 이르되 “화상의 진실하신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아니하오리까.” 대사 이르시되 “곧 네가 부처니라.” 중이 이르되 “어떻게 보림 공부를 하오리까.” 대사 이르시되 “한 티끌이 눈에 있으매 허공 꽃이 요란하게 떨어지나니라”하시니, 그 중이 언하에 크게 깨달으니라.
6. 이상에 들어 말한 바 옛 성인들의 도에 들어온 인연이 명백하고 간이하여 힘을 더는 데에 방해롭지 아니하니 이러한 공안을 인하여 만일 믿어 아는 곳이 있고 보면 곧 옛 성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고 한가지 행하리라.」
7. 묻되 「그대가 말씀하는 견성이 만일 참으로 견성일진대 곧 이 성인인지라 마땅히 신통 변화를 나투어 사람으로 더불어 다름이 있을 것이어늘 어찌한 연고로 지금 시대의 마음 닦는 무리들은 한 사람도 신통 변화를 나타냄이 없나이까.」
8. 대답하되 「너는 함부로 망녕된 말을 하지 말라. 사(邪)와 정(正)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이 미하고 전도한 사람이니 금시에 수도하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되 마음으로는 퇴굴심을 내어 도리어 대중 없는 공부에 떨어진 이가 다 너의 의심하는 바이니, 도를 배우되 선후를 알지 못하며 이치를 설하되 본말을 가리지 못하는 이는 이 사견이라 이름할 것이요 수도라 이름하지 못할지니 오직 저만 그릇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까지 그르쳐 주나니 어찌 가히 삼가지 아니할 바이랴.
9. 대범 도에 들어오는 문이 많으나 강령으로써 말할진대 돈오와 점수의 두 문에 벗어나지 않나니, 비록 가로되 돈오 돈수는 이 최상 근기를 가진 분들의 들어가는 바라 하나 만일 과거를 미루어 볼진대 이도 이미 여러 생에 깨달음을 의지하여 닦고 닦아서 점점 훈습 해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법을 들으면 곧 발오(發悟)하여 한 때에 문득 깨달아 닦아 마치나니 사실로써 말할진대 이도 또한 먼저 깨달아 뒤에 닦은 근기니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일천 성현의 밟아온 궤도라 그러므로 모든 옛 성현들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으며 닦음을 인하여 증득하지 아니함이 없나니 이른바 신통 변화라 하는 것은 깨달음을 의지하여 닦아서 점점 훈습한 결과에 나타나는 것이요 견성하는 그 즉시에 발현하는 것이 아니니라.
10. 저 경에 이르시되 “이치는 곧 문득 깨달을지라 깨달음을 따라 모든 의심이 일시에 사라지려니와 다생에 익힌 습관은 단번에 없애지 못할지라 차례로써 닦음을 인하여 다한다”하셨나니, 그런 고로 규봉 선사께서 깊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의지를 밝혀 가로되 “ 얼음 못이 온전히 이 물인 줄은 알았으나 양기를 빌려서 녹히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은 알았으나 법력을 의지하여 닦을지니, 얼음이 녹은즉 물 흐름이 윤활하여 곧 물 대고 씻는 공효를 나타낼 것이요 망념이 다한즉 심령이 통하여 마땅히 걸림 없는 광명을 얻어 임의로 활용하게 된다”하시니, 밖으로 나타나는 신통 변화는 하룻날에 능히 이룰 바가 아니요 점점 훈습한 결과에 스스로 나타나는 것임을 이에 알겠도다. 하물며 신통 변화라 하는 것은 통달한 사람의 분상(分上)에는 오히려 요망하고 괴이한 일이며 또한 성현의 말변사라 비록 혹 나타났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거늘 금시에 미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녕되이 한 생각을 깨달을 때에 곧 따라서 한량없는 묘용과 신통 변화를 얻는다 하니 만일 이러한 견해를 가질진대 이른바 선후를 알지 못하며 또한 본말을 분간하지 못함이니 이미 선후 본말을 분간하지 못하고 불도를 구하고자 할진대 마치 모난 나무를 가지고 둥근 구멍에 맞추려 함이니 어찌 크게 어긋남이 아니리오.
11. 이미 공부하는 길을 알지 못하는 고로 어렵고 아득한 생각을 지어서 스스로 퇴굴심을 내어 부처의 종성(種性)을 끊는 이가 많지 않다 할 수 없는지라 이미 스스로 밝지 못할새 또한 다른 사람의 깨친 것을 믿지 아니하여 신통이 없는 이를 보면 이에 경만심을 내어 어진 이를 속이고 성현을 속이나니 진실로 가히 불쌍한 일이로다.」
12. 묻되 「그대가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일천 성인의 궤도라 하니 깨치기를 이미 문득 깨쳤을진대 점수할 필요가 무엇이며 닦기를 만일 점점 닦았을진대 어찌 돈오라고 말하리오. 돈오와 점수의 두 가지 뜻을 다시 펴 말씀하시와 나로 하여금 남은 의심을 제거하게 하소서.」대답하되 「돈오라 하는 것은 범부가 미했을 때에 사대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아서 자성이 참 법신인 줄을 알지 못하며 자기 영지(靈知)가 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 부처를 구하여 물결과 물결을 따라서 허망히 돌아다니다가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를 힘입어서 정로에 찾?? 들어 한 생각으로 빛을 도리켜 자기의 본성을 보니 이 성품 자리에는 원래에 번뇌가 없고 샘이 없는 지혜가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곧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털끝 만치도 다름이 없는 것을 알았을새 그런 고로 돈오라 하는 것이요,
13. 점수라 하는 것은 비록 본성이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알았으나 다생 겁래로 익혀온 습기를 졸연히 다 제하기가 어려운 고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서 점점 훈습하여 공을 이루어 성태(聖胎)를 장양하여 오래 오래 한 뒤에라야 성인을 이룰새 그런 고로 점수라 하나니, 비컨대 어린 아이가 처음 나는 날에 육근을 갖춤이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그러나 그 힘이 충실하지 못하여 오랜 세월을 지낸 뒤에라야 비로소 성인(成人)이 되는 것과 같나니라.」
14. 묻되 「어떠한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으로 기틀을 돌이켜 문득 자성을 깨치게 되오리까.」대답하되 「다만 네 마음이어늘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리오.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앎을 구할진대 비컨대 한 사람이 있어 자기의 눈을 보지 못하고 써 이르되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구해 보고자 하는 것과 같도다. 이미 자기의 눈이어니 어떻게 다시 볼 수가 있으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만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본 사람이라 다시 구해 볼 마음이 없거니 어찌 보지 아니하였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이거니 어찌 다시 앎을 구하리오. 만일 앎을 구할진대 문득 얻지 못할 줄을 알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을 알면 이것이 곧 견성한 것이니라.」
15. 묻되「상상 근기를 가진 사람은 들으면 곧 쉽게 알려니와 중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의혹심이 없지 아니할지니 다시 방편을 말씀하사 미한 이로 하여금 깨쳐 들어가게 하옵소서.」대답하되 「도는 알고 알지 못하는 데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니 너는 미함을 가져 깨달음을 기다리는 마음을 제해 버리고 나의 말을 들으라. 모든 법이 꿈과 같으며 또한 환화와 같은 고로 망녕된 생각이 본래에 적적하고 티끌 경계가 본래에 공해서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령하게 아는 것이 매하지 아니하나니 이 공적한 가운데 영지하는 마음이 곧 네 본래 면목이며 또한 이 삼세 제불과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의 밀밀히 서로 전하시는 법인이니라. 만일 이 마음을 깨달으면 참으로 이른 바 계단을 밟지 아니하고 지름길로 부처의 지위에 올라서 걸음 걸음이 삼계를 초월하며 집에 돌아와서 문득 모든 의심을 끊을지라 문득 인천의 스승이 되어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서 자리이타를 아울러 행하여 인천의 공양을 능히 받되 날로 만량 황금을 소비시키리니 네가 만일 이러할진대 참으로 대장부라 일생에 할 일을 이미 마치었다 할지니라.」
16. 묻되 「나의 분상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이 이 공적 영지의 마음이오니까.」대답하되 「네가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이 너의 공적 영지의 마음이니, 어찌 반조해 보지 못하고 오히려 밖으로 찾는가. 내가 지금 너의 분상에 의지하여 바로 본심을 가리켜서 너로 하여금 문득 깨치게 하리니 너는 마땅히 마음을 청정히 하여 나의 말을 들으라.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도록 열 두 때 가운데 혹 보며 혹 들으며 혹 웃으며 혹 말하며 혹 성내며 혹 기뻐하며 혹 옳다 혹 그르다 하다 하여 가지가지로 베풀어 행하고 운전하나니, 말하여 보라 필경에 이 누가 능히 이렇듯 운전하고 베풀어 행하게 되는고.
17. 만일 색신이 운전한다 할진대 어찌하여 사람이 한 생각을 끊어 명(命)을 마치면 시체가 아직 썩고 무너지지 아니하였으되 곧 눈이 스스로 보지 못하며 귀가 능히 듣지 못하며 코가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가 말하지 못하며 몸이 움직이지 못하며 손이 잡지 못하며 발이 걷지 못하느냐. 능히 보고 듣고 동작하는 것이 반드시 네 본심이요 네 색신이 아님을 이에 알겠도다. 하물며 이 색신은 사대의 성품이 공하여 저 거울 속에 형상과 같으며 물 가운데 있는 달과 같나니, 어찌 능히 요요하게 항상 알며 밝고 밝아 어둡지 아니하여 드디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묘용을 느껴 통하리오. 그런 고로 이르시되 “신통과 아울러 묘용이 물긷고 나무 운반하는 것이라”하였나니라.
18. 또한 성리에 들어가는 길이 많으나 너에게 한 문을 가리켜서 너로 하여금 본원처에 돌아가게 하리니, 네가 또한 가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느냐.」 가로되 「듣나이다」 가로되 「네가 또한 너의 듣는 성품 가운데에도 허다한 소리가 있음을 듣느냐.」 가로되 「이속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을 함께 가히 얻지 못하리이다.」 가로되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이 이 관음보살의 성리에 들어가신 문이로다. 내 지금 너에게 묻노니, 네가 이르되 “이 속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을 다 가히 얻지 못한다”하니, 이미 가히 얻지 못할진대 이러한 때를 당하여는 이 허공이 아니냐.」 가로되 「원래 공하지 아니하여 밝고 밝아 어둡지 아니하나이다.」 가로되 「어떤 것이 이 공하지 아니한 체성인고.」 가로되 「또한 형상과 얼굴이 없는지라 말로써 가히 미치지 못하리이다.」 가로되 「이것이 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의 수명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지어다.
19. 이미 형상과 모양이 없을진대 또한 크고 작음이 있겠느냐. 이미 크고 작음이 없을진대 또한 가와 즈음이 있겠느냐. 가와 즈음이 없는 고로 안과 밖이 없고, 안과 밖이 없는 고로 멀고 가까운 것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고로 피차가 없나니, 피차가 없은즉 오고 가는 것이 없고, 오고 가는 것이 없은즉 나고 죽는 것이 없고, 나고 죽는 것이 없은즉 예와 이제가 없고, 예와 이제가 없은즉 미하고 깨침이 없고, 미하고 깨침이 없은즉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은즉 물들고 조촐함이 없고, 물들고 조촐함이 없은즉 옳고 그름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은즉 일체의 이름과 말을 다 가히 얻지 못할지니, 이미 다 없음이 이와 같아서 일체의 근(根)과 경(境)과 일체의 망념과 내지 가지가지의 형상과 모양과 가지가지의 이름과 말을 한가지 얻지 못할진대 이 어찌 본래에 공적하며 본래에 물(物) 없음이 아니리오.
20.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가 매하지 아니하여 무정물과 같지 아니하고 성품이 스스로 신기롭게 아나니 이것이 곧 네 공적 영지의 청정한 심체라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이 이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지신 밝은 마음이며 또 일체 중생의 본원 각성이니, 이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온전하고 한결같은 자리에 앉아 촌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해탈을 얻을 것이요 이것에 미하여 배반한 이는 육취(六趣)에 흘러 긴 겁을 윤회하나니라. 그런고로 이르되 “한 마음이 미하여 육취에 가는 이는 자성을 떠나는 것이요 동(動)하는 것이며 법계를 깨쳐 한 마음을 회복한 이는 자성에 돌아오는 것이요 정(靜)하는 것이라” 하시니, 비록 미하고 깨침이 다를지언정 그 본원인즉 하나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말한 바 법이란 것은 중생의 마음을 이름이라”하시니라.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에게 있어 더하지 아니하고 범부에게 있어 덜하지 아니한지라 그런고로 이르시되 “성인의 지혜 가운데 있어서도 빛나지 아니하고 범부의 마음 가운데 숨어서도 매하지 아니한다”하시니, 이미 성인에게 더하지도 아니하고 범부에게 덜하지 아니할진대 부처님과 조사가 무엇이 사람에 다름이 있으리오, 써 사람에 다르다 하는 것은 능히 스스로 마음을 잘 두호해 가지시는 것 뿐이니라.
21. 네가 만일 신심을 얻으면 모든 의심이 문득 쉬리니 장부의 뜻을 내며 진정한 견해를 발하여 친히 그 맛을 보아 스스로 긍정하는 땅에 이른즉 이것이 마음 닦는 사람의 깨친 곳이라 다시 계급과 차제가 없을새 그런고로 돈오라 한 것이니, 저 이르되 “믿는 인(因)의 가운데 모든 부처님의 과덕(果德)에 계합하여 털끝만치도 다르지 아니하여야 바야흐로 참 신심을 이룬다”하니라.」
22. 묻되 「이미 이 이치를 깨쳤을진대 다시 계급이 없거늘 어찌 뒤에 닦아서 점점 훈습하며 점점 이룬다 하리이까.」 대답하되 「깨친 뒤에 점점 닦는 뜻을 앞에 이미 갖추어 말하였거늘 아직도 의심을 놓지 못하니 한 번 더 말하여 주는 것도 무방할지라 너는 마땅히 마음을 청정히 하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범부가 비롯이 없는 광대의 겁으로 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오도(五道)에 윤회하여 생을 받아 올 때나 죽어 갈 때나 나라 하는 것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 전도와 무명 습기로 오래 오래 습관이 되었을새 금생에 이르러서 문득 자성이 본래에 공적하여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알았으나 이 옛 습관을 졸연히 제거하기가 어려운 고로 역경과 순경을 만나매 성내고 기뻐하는 마음과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마음이 성하게 일어나서 객진 번뇌가 전과 더불어 다름이 없나니 만일 반야로써 공을 더하고 힘을 들이지 아니하면 어찌 능히 무명을 대치하여 크게 쉬고 크게 쉬는 땅에 이르게 되리오. 저 이르시되 “깨친 바가 비록 부처님과 같으나 다생에 습기가 깊은지라 바람은 잤건마는 물결은 오히려 출렁거리고 성리는 나타났건마는 망념은 오히려 침노한다”하며, 또 종고 선사께서 이르시되 “왕왕히 재주 있는 무리들이 많은 힘을 들이지 아니하고 견성을 하면 문득 용이한 생각을 내어 다시 닦고 다스리지 아니하다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전과 같이 유랑하여 악도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하시니, 어찌 가히 한 때에 깨친 바로써 문득 뒤에 닦는 것을 저버리리오. 그런 고로 깨친 뒤에 항상 마땅히 비추고 살펴서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덜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처에 도달한 것이니, 천하 선지식들의 깨친 뒤에 목우행이 이것이니라.
23. 비록 뒤에 닦음이 있다 하나 이미 먼저 망념이 본래에 공하고 심성이 본래에 청정함을 깨쳤을새 악을 끊되 끊음이 끊는 바가 없고 선을 닦되 닦음이 닦는 바가 없나니 이것이 이에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라 그런고로 이르시되 “비록 만행을 갖추어 닦으나 오직 무념으로써 종(宗)을 삼는다”하시고 규봉 선사께서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뜻을 총괄적으로 판단해 가로되 “이 성품이 원래 번뇌가 없고 샘이 없는 지혜 성품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이 부처님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문득 깨쳐서 이에 의지하여 닦는 이는 이 최상승선이라 이름하여 또한 여래의 청정선이라 이름하나니라. 만일 능히 생각 생각을 닦아 익히면 자연히 점점 백천삼매를 얻으리니 달마 문하에 전전히 서로 전하여 온 것이 곧 이 선이라”하나니, 곧 돈오와 점수의 두 뜻이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만 빠져도 옳지 못하나니라.
24. 어떤 이는 선악의 성품이 공함을 알지 못하고 굳이 앉아 움직이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을 억지로 눌러 항복 받기를 마치 돌로써 풀을 누르는 것과 같이 하면서 써 마음을 닦는다 하니 이것이 크게 미혹함이로다. 그런 고로 이르시되 “성문은 마음 마음이 미혹을 끊되 능히 끊는 마음이 이 도둑이라”하시니, 다만 살생과 도적과 간음과 망어가 성품으로 좇아 일어남을 자세히 관하면, 일어나되 곧 일어남이 없는지라 당처가 문득 고요하나니 어찌 반드시 다시 끊으리오. 그런고로 이르시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깨침이 더딤을 두려워하라”하며 또 이르시되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치라. 깨치면 곧 없어진다”하시니, 그런 고로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비록 객진 번뇌가 있으나 한 가지로 제호를 이루나니 다만 미혹된 마음이 근본이 없는 자리를 비추어 보면 허공 꽃과 같은 삼계가 바람에 연기 같이 걷어지고 육진 번뇌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25. 만일 능히 이와 같이 생각 생각이 닦고 익혀서 본래 면목을 비추어 봄을 잊지 아니하여 정(定)과 혜(慧)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자연히 담박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더하고 밝으며 모든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부가 자연히 더 진보되어 모든 번뇌가 다하는 때에 생사가 끊어질 것이요 만일 미세한 번뇌까지라도 영원히 끊어 버리고 원각대지가 훤하게 홀로 나타나면 곧 천 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어느 국토에든지 느낌에 다다르고 기틀에 응하되 마치 저 한 바퀴 둥근 달이 중천에 나타나매 그 그림자가 천강 만수에 비침과 같아서 응용함이 한량 없어서 유연중생을 제도하되 쾌락하여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을 대각 세존이라 하나니라.」
26. 묻되 「깨친 뒤 닦는 문 가운데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진다는 뜻을 실로 밝게 알지 못하오니 다시 베풀어 말씀하시와 자세히 보이어 미한 소견을 열으사 하여금 해탈의 문에 들게 하소서.」 대답하되 「만일 법의를 베풀어 말할진대 성리에 드는 문이 많으나 정과 혜 아님이 없고 그 강요를 취하건대 다만 자성상의 체와 용 두 가지 뿐이니 앞에 말한 공적 영지가 이것이라 정은 이 체요 혜는 이 용이니 체에 나아가 용이 있는 고로 혜가 정을 여의지 아니하고 용에 나아가 체가 있는 고로 정이 혜를 여의지 아니하며 정이 곧 혜인고로 고요한 가운데에도 항상 신령하게 아는 지혜가 있고 혜가 곧 정인 고로 신령하게 알면서도 항상 고요한지라 그러므로 육조 대사께서 이르시되 “ 심지가 요란하지 아니함이 자성의 정이요 심지가 어리석지 아니함이 자성의 혜라”하시니, 만일 이와 같음이 깨쳐서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며 막히고 밝음이 둘이 아닌즉 이것이 곧 돈오 문에 정과 혜를 쌍으로 닦는 것이니라.
27. 만일 말하되 “먼저 적적함으로써 분별 망상을 다스리고 뒤에 성성함으로써 혼침에 떨어짐을 다스린다”하여 선후로 대치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골라서 써 정(靜)에 드는 이는 이 점수문 중에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라 비록 성성하고 적적함을 평등하게 갖는다 하나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음을 면하니 못할지니 어찌 성품을 요달한 사람들의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아는 자리를 여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임의로 운전하여 쌍으로 닦는 이가 되리오. 그런고로 육조대사께서 이르시되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다툼에 있지 아니하나니 만일 선후를 다투면 곧 이 미한 사람이라”하시니라.
28. 곧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뜻은 공부하는 데 별로 딴 공력을 쓰지 아니하는지라 원래에 스스로 함이 없어서 다시 특별한 처소와 시절이 없을새 빛을 볼 때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대소변 볼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사람을 대하여 말할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누울 때와 혹 말하고 혹 묵묵하고 혹 기뻐하고 혹 성내는 데에 이르기까지 일체 시중에 낱낱이 이와 같이 하되 마치 빈 배를 물결에 멍에하매 높은 것을 따르고 낮은 것을 따르는 것과 같으며 물이 산을 끼고 돌매 굽은 곳을 만나면 굽은대로 가고 곧은 곳을 만나면 곧은대로 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 마음이 분별이 없나니 오늘에도 헌거롭게 임의로 운전하고 내일에도 헌거롭게 임의로 운전하여 모든 인연을 따라 순하되 막히고 걸림이 없으며 선을 닦되 닦는 상이 없고 악을 끊되 끊는 상이 없어서 순박하고 곧아서 거짓됨이 없고 보고 듣는 것이 심상한지라 한 티끌도 상대되는 것이 없거니 어찌 방탕한 생각을 보내려고 하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며 한 생각의 정욕도 내지 않는지라 망녕된 인연을 잊으려고 하는 힘을 빌릴 것이 없나니라.
29. 그러나, 업장이 두텁고 습관이 무거우며 법을 관하는 힘이 약하고 마음이 떠서 무명의 힘은 크고 반야의 힘은 작으므로 선악 경계에 동정이 서로 번갈아 번뇌를 일어냄을 면치 못하여 마음이 편하고 담담하지 못한 이는 인연을 잊고 방탕을 없애는 공부가 없지 못할지니 저 이르되 “육근이 경계를 대하되 마음이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것을 정이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한가지로 공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는 것을 혜라”하니 이 비록 수상문 정혜라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이나 망연을 대치하는 문 가운데에는 가히 없지 못할지니라. 만일 산란심이 불같이 일어난즉 먼저 정으로써 자성 본리에 맞추어 흩어진 마음을 거두어 들여 마음이 망녕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여 본래 고요한 자리에 계합하게 하고 만일 혼침이 많은 즉 혜로써 법을 택하고 공을 관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어서 근본 지혜에 계합하게 할지니 정으로써 난상을 다스리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려 동정의 상이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이 다한즉 경계를 대하여도 생각 생각이 근본에 돌아오고 인연을 만나도 마음 마음이 도에 계합하여 자유로이 운전하고 쌍으로 닦아 곧 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져 밝게 불성을 본 이라 할 것이니라.」
30. 묻되 「그대의 판단한 바에 의지할진대 깨친 후에 닦는 문 가운데에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뜻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성 정혜요 둘은 수상 정혜라 자성문 정혜는 가로되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아는 것을 임의로 운전하여 원래에 스스로 함이 없어서 한 티끌고 상대되는 것이 없거니 어찌 방탕한 생각을 보내려고 하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며 일념의 정욕도 내지 아니하는지라 망녕된 인연을 잊으려 할 것이 없다”하여, 판단해 말하되 “이것이 돈오문 가운데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라”하고, 수상문 정혜는 가로되 “자성에 맞추어 흩어진 마음을 거두며 법을 택하고 공을 관하되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골라 써 함이 없는 데에 들어 간다”하여, 판단해 말하되 “이것이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라”하니 이 정 혜 두 문에 나아가 의심이 없지 아니하옵니다.
31. 만일 한 사람이 행할 바라 할진대 먼저 자성문에 의지하여 정과 혜를 쌍으로 닦은 연후에 다시 수상문 대치의 공을 쓰나이까. 그렇지 아니하면 먼저 수상문에 의지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고른 연후에 자성문에 들어가나이까. 만일 먼저 자성문 정혜에 의지한즉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다시 대치하는 공력이 없거니 어찌 모름지기 다시 수상문 정혜를 취하리오. 결백한 옥을 가져 문채를 아로새겨 덕을 상함과 같고, 만일 먼저 수상문 정혜로써 대치의 공을 이룬 연후에 자성문에 나아간즉 완연히 이 점수문 중에 하열한 근기의 깨치기 전에 점점 훈습하여 닦는 것이니 어찌 돈오문 가운데 먼저 깨치고 뒤에 닦아 공 없는 공을 쓰는 것이라 할 것이며,
32. 만일 한 때라 전후가 없은즉 두 문의 정혜에 돈과 점이 다름이 있나니 어찌 한 때에 아울러 행하리오. 곧 돈오문에는 자성문을 의지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공용이 없는 것이요 점수문에 하열한 근기는 수상문에 나아가 대치하는 공력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니 두 문의 근기가 돈점이 다르고 우열이 명백하거늘 어찌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문 가운데에 두 가지를 같이 해석하나이까. 청컨대 나를 위하여 알려주시와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소서.」 대답하되 「해석이 명백하거늘 네가 스스로 의심을 내는도다. 말을 따라 사량을 내면 점점 의혹이 날 것이요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힐난할 것이 없나니라. 만일 돈오와 점수 두문에 나아가 각각 행하는 바를 판단할진대 자성문 정혜를 닦는 이는 이것이 이 돈오문에 공 없는 공을 닦아 아울러 운전하고 쌍으로 고요하여 스스로 자성을 닦아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것이요,
33. 수상문 정혜를 닦는 이는 이 깨치기 전 점수문의 하열한 근기가 대치하는 공력을 써서 마음 마음이 미혹을 끊어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는 것이니 이 두 문의 행하는 바가 돈과 점이 각각 다른지라 가히 섞어 어지럽게 말지어다. 그러나 깨친 뒤에 닦는 문 ?×諍? 수상문 대치를 겸해 말하는 것은 온전히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길을 빌려서 익힐 따름이니, 어찌한 연고인고 이 돈오문 중에서도 또한 근기가 승한 이도 있고 근기가 하열한 이도 있어서 가히 한 예로 그 행리(行李)를 판단하지 못할지니,
34. 만일 번뇌가 담박하고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선을 닦되 닦는 상을 떠나고 악을 끊되 끊는 상을 떠나서 팔풍(八風=利 )에 동하지 아니하고 삼수(三受=苦受 樂受 捨受)가 고요한 이는 자성의 정혜를 의지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고 쌍으로 닦아서 천진하여 짓는 바가 없고 동과 정이 항상 선(禪)인지라 자연의 이치를 성취하거니 어찌 수상문의 대치하는 법을 빌리리오.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않나니라. 비록 먼저 문득 깨쳤으나 번뇌가 농후하고 습기가 굳고 무거워서 경계를 대하매 생각 생각이 망정(妄情)을 내고 모든 인연을 만나매 마음 마음이 상대를 지어서 혼침과 산란의 부림을 입어 공적 영지의 떳떳함을 매각한 이는 곧 수상문 정혜를 빌려 대치하는 공부를 잊지 말고 혼침과 산란을 고르게 골라 써 함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 곧 마땅한 일이니 비록 대치하는 공부를 빌려 잠간 동안 습기를 조복받으나 먼저 문득 심성이 본래 청정하고 번뇌가 원래 공한 자리를 깨쳤는 고로 곧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오염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35. 왜냐 하면 깨지 못하고 닦는 것은 비록 공력을 써서 잊지 아니하여 생각 생각이 훈습해 닦으나 닿는 곳 마다 의심을 내어 마음 가운데 걸려 있음이 마치 한 물건이 가슴 가운데 걸려 있음과 같아서 편안하지 못한 모양이 항상 앞에 나타나 있다가 일구 월심하여 대치하는 공력이 순숙한즉 신심 객진이 가볍고 편안해짐과 흡사하리니 비록 또한 가볍고 편안하다 하나 의심 뿌리를 끊지 못함이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생사 경계에 자유함을 얻지 못할새 그런 고로 이르시되 “깨지 못하고 닦는 것은 참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하시니라.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비록 대치하는 방편이 있으나 생각 생각이 의심이 없어서 오염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일구 월심하면 자연히 천진 묘성에 계합하여 공적 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생각 생각이 일체 경계를 반연하되 마음 마음이 길이 모든 번뇌를 끊으며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고 정과 혜를 평등히 가져 무상 보리를 성취하되 앞에 근기가 승한 이로 더불어 다시 차별이 없나니 곧 수상문 정혜가 비록 이 점수문에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나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는 가히 이르되 쇠를 단련하여 금을 이룸이라 만일 이와 같음을 안즉 어찌 두 문 정혜로써 선후 자체의 두 가지 소견을 내는 의심이 있으리오.」
36. 원컨대 모든 도 닦는 사람은 이 말을 잘 연구하고 맛을 붙여 다시 의심하여 스스로 퇴굴심을 내지 말지어다. 만일 장부의 뜻을 갖추어 무상 보리를 구하는 이 일진대 이것을 놓고 무엇을 하리오. 간절히 문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바로 진실한 자리를 요달하여 낱낱이 자기의 본성에 나아가 본 종지에 계합하면 곧 스승 없는 지혜가 자연히 앞에 나타나고 천진의 성리가 뚜렷이 매하지 아니하여 혜신(慧身)을 성취하되 다른 사람의 깨침을 말미암지 아니하리라. 이 묘한 의지가 비록 모든 사람에게 다 있으나 만일 일찌기 반야 종지를 심은 대승 근기가 아니면 능히 한 생각에 정신을 내지 못하리니, 어찌 한갓 믿지만 아니하리오 또한 이에 비방하여 도리어 무간 지옥을 부르는 이가 종종 있나니라. 비록 믿어 받지는 아니할지라도 한 번 귀에 지내어 잠시라도 인연을 맺으면 그 공과 그 덕을 가히 칭량하지 못할지니 그러므로 저 유심결에 이르되 “듣고 믿지 아니할지라도 오히려 불성 종자의 인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인천의 복이 덮힌다”하였나니 성불할 정인(正因)을 잃지 않거든 하물며 들어 믿으며 배워 이루어서 항상 수호하여 잊지 아니하는 이야 그 공덕을 어찌 능히 헤아리리오.
37. 과거의 윤회하던 업을 미루어 생각할진대 그 몇 천겁을 흑암 지옥에 떨어지고 무간 지옥에 들어가 가지 가지의 고통을 받은지를 알지 못하겠으며 또한 그 얼마나 불도를 구하고자 하되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긴 겁을 윤회에 빠져 어둡고 어두워 깨지 못하여 모든 악업을 지었는지 알지 못하겠도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부지 불각에 한숨이 나오나니 어찌 가히 방심을 하여 두 번이나 전일의 재앙을 받으리오. 또한 누가 다시 나로 하여금 이제 사람으로 태어나 만물의 영장이 되어 참을 닦는 길에 매하지 않게 하였는지 진실로 눈 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고 작은 겨자에 바늘을 던짐이라 그 경사롭고 다행함을 어찌 다 말하리오. 내가 이제 만일 스스로 퇴굴심을 내거나 혹 해태심을 내어 항상 뒷날을 바라다가 잠간 사이에 목숨을 잃고 악도에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을 때에 비록 한 마디 불법을 들어서 신해 수지하여 괴로움을 면하고자 한들 어찌 가히 얻으리오. 위태한데 이르러서는 뉘우쳐도 아무 이익이 없나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들은 방일심을 내지 말며 탐욕과 음욕에 착하지 말고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하여 자성 본리를 비추어 봄을 잊지 말지어다. 무상이 신속하여 몸은 아침 이슬과 같고 목숨은 서산에 걸린 해와 같은지라 금일에는 비록 있으나 명일을 또한 안보하기 어렵나니 간절히 뜻에 두며 간절히 뜻에 둘지어다.
38. 또한 세간에 함이 있는 선을 의지할지라도 또한 가히 삼도의 고륜(苦輪)을 면하고 천상 인간에 수승한 과보를 얻어 모든 쾌락을 받거든 하물며 이 최상승 심심 법문은 잠시 동안 믿음을 낼지라도 이루는 공덕을 가히 비유로써 그 조금도 말할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저 경에 이르시되 “만일 사람이 삼천 대천 세계 칠보로써 그 곳 세계 중생에게 보시하여 다 충만함을 얻게 하며 또 그 곳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저로 하여금 사과(四果)를 얻게 하면 그 공덕이 한량없고 가 없으나 한 차례 밥 먹을 사이에 정히 이 법을 생각하여 얻는 공덕만 같지 못하다”하시니, 나의 이 법문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하여 저 모든 공덕에 비하여 미치지 못함을 이에 알겠도다. 그런 고로 또 경에 이르시되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이 도량이라, 항사의 칠보 탑을 짓는 것보다 승하도다. 보탑은 필경에 부서져 티끌이 되려니와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하시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연구하고 맛을 붙여 간절히 뜻에 둘지어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오. 이제 만일 닦지 아니하면 만겁에 어그러질 것이요 이제 만일 강연히 닦으면 닦기 어려운 행이라도 점점 어렵지 아니함을 얻어 공부가 스스로 진보되리라. 슬프다 지금 사람들이 주림에 좋은 음식을 만나되 먹을 줄을 알지 못하며 중병에 명의를 만나되 약 먹을 줄을 알지 못하나니, 가로되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지 않는 이는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이로다.
39. 또한 세간에 함이 있는 일은 그 형상을 가히 보며 그 공을 가히 증험할 수 있을새 사람이 한 일만 얻을지라도 그 희유함을 찬탄하거니와 나의 마음 종지는 형을 가히 볼 수 없으며 상을 가히 볼 수 없어서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고로 천마 외도가 훼방하려 하여도 문이 없고 석범 제천이 칭찬하려 하여도 미치지 못하거든 하물며 범부 천식의 무리가 어찌 능히 방불하리오. 슬프다 우물 개구리가 어찌 창해의 넓은 것을 알며 여우가 어찌 능히 사자의 소리를 하리오. 그런 고로 알라. 말법세 가운데에 법을 듣고 희유한 생각을 내어 신해 수지하는 이는 이미 무량겁 중에 모든 성현을 받들어 모든 선근을 심어 깊이 반야의 정인(正因)을 맺은 최상 근성이로다. 그런 고로 금강경에 이르시되 “이 장귀에 능히 신심을 내는 이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무량불소에 모든 선근을 심었음이라”하시고, 또 이르시되, “대승심을 발한 이를 위하여 설하며 최상승심을 발한 이를 위하여 설한다”하셨나니라.
40. 원컨대 모든 도를 구하는 사람은 겁약한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용맹심을 발하라. 숙겁의 선인을 가히 알지 못할지니라. 만일 자기의 수승한 것을 믿지 아니하고 하열한 것을 달게 여겨 어렵고 막힌 생각을 내어 지금에 닦지 아니한즉 비록 숙세의 선근이 있다 할지라도 지금에 끊어버리는 고로 더욱 그 어려운 데에 처하여 갈수록 멀어지리라. 이제 이미 보소에 왔을진대 가히 빈 손으로 돌아가지 말 것이니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어버리면 만겁에 희복하기 어려울지라 청컨대 마땅히 삼갈지어다. 어찌 지혜 있는 이가 그 보소를 알고 도리어 구하지 아니하고 길게 외롭고 빈한함을 원망하리오. 만일 보배를 얻고자 할진대 가죽 주머니를 놓아 버릴지니라.
[ 附 漢文 ]
1. 三界熱惱가 猶如火宅이어늘 其忍淹留하야 甘受長苦아
欲免輪廻인댄 莫若求佛이요
若欲求佛인댄 佛卽是心이니 心何遠覓고 不離身中이로다
色身은 是假라 有生有滅커니와 眞心은 如空하야 不斷不變이니라
故로 云百骸는 潰散하야 歸火歸風호대 一物은 長靈하야 盖天盖地라하니라
2. 嗟夫라 今之人이여 迷來久矣라
不識自心이 是眞佛하고 不識自性이 是眞法하야
欲求法호대 而遠推諸聖하며 欲求佛호대 而不觀其心하나니
若言心外에 有佛하고 性外에 有法이라하야 堅執此情하야
欲求佛道者인댄 縱經塵劫토록 燒身燃臂하며 敲骨出髓하며 刺血寫經하며
長坐不臥하며 一食卯齋하며 乃至轉讀一大藏敎하야 修種種苦行하야도
如烝沙作飯하야 只益自勞爾니 但識自心하면
恒沙法門과 無量妙義를 不求而得하리니
故로 世尊이 云普觀一切衆生하니 具有如來智慧德相이라하시고
叉云一切衆生種種幻化가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하시니
是知커라 離此心外에 無佛可成이로??
3. 過去諸如來도 只是明心底人이며
댓글목록
조화봉님의 댓글
조화봉 작성일
상제님이 불지형체라 하셨는데 왜 불지형체라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유지범절은 의미가 드러나잖아요. 예의 범절이라고...
선지조화도 조화라고 하니 아는 듯 모르는 듯 알것 같고요.
그런데 불지형체라 하셨으니 ....
금강산주님의 좋은 글을 읽고 한번 깨쳐 볼랍니다.
일심이님의 댓글
일심이 작성일
https://www.youtube.com/watch?v=a3-YVI2A_do&feature=youtube_gdata_player
수심결강의입니다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큰통나무님의 댓글
큰통나무 작성일일심이님 좋은 영상자료 잘 보았습니다. 혹시 고최인호 선생의 "길없는길" 읽어 보셨나요. 안 읽어보셨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권 말부터 3권을 넘어가면서 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심이님의 댓글
일심이 작성일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통나무님의 댓글
큰통나무 작성일금강산주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39절의 여우가 어찌 능히 사자의 소리를 하리오가 왠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깨우침의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증산교본부 교인 배모분이 지금 신앙하고 계신 분이신가가요?
금강산주님의 댓글
금강산주 작성일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