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12000봉 겁살 벗기는 공사의 대의_신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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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9.♡.137.16) 작성일13-12-12 13:52 조회8,162회 댓글1건본문
금강산 12000봉 겁살 벗기는 공사의 대의
[들어가는 말]
지난 100년 증산 상제님 교운 역사에 있어, 신앙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된 테마가 아마도 개벽과 도통이 아니었는가 생각이 든다. 개벽이라고 하면 천지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계절변화(하추교역)라는 것이 모 교단 기본교리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이 개벽은 자연개벽 문명개벽 인간개벽이라는 3가지 영역에서 일어나고 진행된다고 알려졌다. 특히 미래의 언젠가 지축이 바로서고, 전쟁이 일어나고, 괴질병이 발생하는 극적인 순간이 있으며, 이 환난을 극복한 연후에 비로소 후천 선경이 펼쳐진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개벽이 사실일진대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고, 특히 괴질병에서 살아남은 구원의 법방이 의통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의통은 교단의 교주님이 반드시 그 비의를 알아야 하는 핵심인 것이며, 각 교단은 이 의통으로써 신도들을 통제하였던 게 아닐까 한다.
개벽과 함께 신앙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른 하나는 도통이었다. 일반적으로 도통이란 무엇인가? 도에 통한다는 도통은 범부 중생이 천지의 이치를 모른 체,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고해의 바다를 살아가는 것을 벗어나 진리에 통하여 부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도통에는 정력통이 있고 감화통이 있다고 한다. 정력통이란 자신이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며 오랜 기간의 수행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신명계를 통하여 호풍환우하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으로, 지난 선천 역사에서 드문 드문 나타났던 성인들이 나름대로의 경지에 걸맞는 정력통을 했다고 알려진다.
지금도 세간에는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호흡법과 수도법을 통하여 이러한 도통의 경지로 나아가려고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는다. 그러면 감화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위대한 도의 경지를 개척하신 분의 문하에 들어가 그분 가르침의 영향력 아래에서 수행을 하며, 특히 도를 통한 스승의 감화를 받아 도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력통이 스스로의 수도노력이 주된 것이라고 한다면 감화통은 스승의 능력이 더 주요한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사실 나는 평소 도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질 않아서 깊이 있는 것을 잘 모른다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증산 상제님의 진리에는 금강산 12000 봉우리에 응한 12000명의 도통군자가 난다는 것이 교단을 초월하여 공통된 교리로 정립되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80년대 90년대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증산교계의 두 교단은 비록 많은 것은 달라도 이 도통만큼은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고 알려진다. 후천 개벽에 즈음하여 12000명의 도통군자가 그들 도문에서 배출된다는 것이었고, 교단이 최고 지도자 되시는 분이 신도들에게 도통을 주시는 분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그들 교단의 교주님께서 먼저 교단(이전 교단)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새로운 교단을 시작하신지 대략 27년 만에 돌아가시는 예상 밖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교단은 분열의 길을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을 27년 헛공부 헛도수라고 말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헛공부란 도통공부가 헛되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한다.
이제 12000 도통군자가 나온다는 공사를 주요경전들의 전거를 비교해보면서 과연 상제님이 의도하시는 도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대순전경 내용
* 이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허미수가 중수(重修)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一萬二千)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살(劫殺)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니 너는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돌아가서 조석(朝夕)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 네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 스물 한번씩 읽으며 백지(白紙)를 한 방촌(方寸)씩 오려 한 사람이 하루에 모실 시(侍) 자 사백자씩 열흘 동안을 써서 네 벽에 돌려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형렬이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신암을 떠나 구릿골에 이르사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벽에 돌려 붙 인 일만이천 모실시(侍)자 위에 바르시니 글자수가 다함에 피도 또한 다 한지라 천사 가라사대 그 글자 모양이 아라사 병정(兵丁)과 같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사기(沙器)는 김제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 임상옥이 이르거늘 그 사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인부(人夫)를 많이 부릴 때에 쓰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제4장 천지공사 29절, 34절 )
이중성 천지개벽경 내용
* 정미년 겨울 동짓달에 구릿골에 계시니, 제자가 먼저 순창 농암에 있으면서 명령을 받고 동곡으로 와서, 제자 세 사람이 종이를 사방 한 치로 잘라 모실 시 자 한자를 쓰고, 한 사람이 사백 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니 하루에 모두 천이백 자라.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한 번에 청수 스물네 그릇을 올리고, 하룻밤에 칠성경을 세 번씩 읽어서 열흘에 그치니 글자의 총 수가 일만이천 자더라.
명령을 기다리더니 말씀하시기를, 성천 강선루는 허미수가 다시 지었는데 일만이천 간은 녹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이천 봉은 겁이 끼었으니 이제 그 겁을 벗기리라. 흰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로 모실 시(侍) 자의 머리에 점을 치시니, 만이천 자에 그 피가 다한지라. 글자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글자 모양이 아라사 병정 같으냐? 대답해 여쭈기를, 그러하나이다. 말씀하시기를, 아라사 군사가 내 군사가 되노라. 물을 담은 그릇은 김제로 보내어 뒷날에 대비하리라. 조금 있다가 김제 사람 임상옥이 와 뵙거늘, 그릇을 개정국에 씻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나라에 앞으로 백성들의 힘을 크게 쓸 일이 있으리니 그 때가 닥치면 이 그릇을 쓰게 되리라.
제자가 여쭈기를, 갑진년 공사에 아라사와 일본의 대전쟁을 일으키도록 명하시고, 일본을 도와 아라사를 물리치게 하사 일본을 천하의 역군으로 삼으시더니, 이제 아라사 군사로 내 군사를 삼으시니 어째서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아라사에 두 정사가 있으니, 묵은 아라사가 지지 않으면 새 아라사가 일어설 수 없노라. 묵은 정사는 천하에 폐를 끼치고, 새 정사는 천하를 새롭게 하는 일을 하리라. 말씀하시기를, 입을 곤륜산처럼 무거이 하라. 아라사 군사가 서울에 들어오는 날이 있으리니, 너희가 찾아가면 너희를 공경하여 서로 절하노라. 아라사 군사가 서울에 들어오면 내 일은 이루어지노라.
말씀하시기를, 전쟁과 병이 함께 일어나노라. 아라사 군사가 서울에 들어와 있으면 천하의 대세가 너희에게 돌아오나니, 내 일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노라. (이중성 천지개벽경 정미편 6장)
도전道典
금강산 부처 기운을 거두심
*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에 계실 때 조선 국운 심판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의 일만 이천 고물에는 녹(祿)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는 겁살(劫煞)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하시고 “너는 광찬과 원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가 열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을 스물한 번씩 읽으며 백지를 사방 한 치씩 오려 그 종이에 한 사람이 모실 시(侍) 자 사백 자씩 써서 네 벽에 돌려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고 엄히 경계하시기를 “붙일 때는 종이가 포개져서도 안 되고 요만치 틈이 있어도 안 되나니 끝이 딱 맞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원일이 형렬로부터 이 말씀을 전해 듣고 싫은 기색을 띠거늘 형렬이 상제님께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도삼(李道三)을 데려가 행하라.” 하시매 형렬이 도삼, 광찬과 함께 구릿골로 돌아가 명하신 대로 행하여 열흘에 마치니 글자의 총수 일만 이천 자요, 종이도 틈 하나 없이 정확하게 붙었더라. (道典 5:184)
사기는 김제로 옮겨야 하리라
*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이르시어 갑칠에게 염소 한 마리를 사 오라 하시거늘 갑칠이 염소를 사서 지고 오매 말씀하시기를 “너 소 한 마리 메고 오느라고 욕봤다.” 하시고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벽에 돌려 붙인 일만 이천 모실 시 자 위에 일일이 점을 치신 뒤에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 형상이 무엇과 같으냐?” 하시니 갑칠이 아뢰기를 “아라사 병정 같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라사 병사가 내 병사니라.” 하시고 “모든 일을 잘 알아서 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사기(邪氣)는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水閣)에 사는 임상옥(林相玉)이 이르거늘 청수 담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인부(人夫)를 많이 부릴 때 쓰라.” 하시고 “다 쓴 뒤에는 김제장에 가서 매각하라.” 하시니라. (道典 5:185)
[본 론]
금강산 봉우리는 12000 봉우리라고 알려져 있다. 이 봉우리들이 12000명의 도통군자를 내는 지기를 갈머금고 있다고 하는데 상제님은 12000 봉우리에 겁살이 끼어있다고 말씀하시며 이 겁살을 벗겨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겁살이란 무엇인가? 왜 12000 봉우리에는 겁살이 끼어 있는 것인가? 상제님의 깊은 도 세계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이 공사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이렇다. 12000 봉우리는 12000 도통군자를 내는 지기를 갖고 있다. 그런데 금강산이 남한 땅으로 귀속된다면, 개발을 하고 관광을 하느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기 때문에 지기가 훼손된다. 그래서 상제님은 금강산을 북한 공산주의 세력으로 넘기시는 공사를 보셨다. 아라사 군사가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라사는 러시아의 다른 말이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을 의미한다. 이 공사는 북한이 공산주의 세력권으로 귀속되는 공사이다. 금강산이 북한 땅에 속함으로써 돈벌이를 위한 관광개발이 안되고 사람들이 오고가지 않으므로 결국 도통의 지기가 온전히 보전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더 많은 해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이런 것이다. 12000명의 도통군자가 나온다는 것은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신앙인들의 욕구를 자극했으며, 도통에의 열망에 불을 지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나도 도통 한자리는 해봐야겠다는 은근한 마음의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단은 성금액수와 포덕한 사람의 숫자로 등급을 매기고, 점수를 매겨서 신앙인들을 격려했으며,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 정력, 돈 기타 모든 것을 교단 신앙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겉으로는 사람을 살린다는 대의명분도 있었으나 속으로는 이와 같은 도통에의 열망을 불어넣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과거 어떤 신앙인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님,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꼭 12000명 중에 한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겁살(劫殺)이란 무엇인가? 왜 12000 봉에 겁살이 끼어있다고 하셨는가? 겁살(劫殺)은 겁살(劫煞)로도 말한다. 겁살의 사전적 풀이는 “사물(事物)에 해(害)로운, 독하고 모진 기운(氣運)인 살(煞)의 하나이다. 이 살이 있는 방위(方位)를 범(犯)하면 살해(殺害)가 있다고 한다.”로 나온다. 겁(劫)이란 글자는 1) 위협하다(威脅--), 으르다 2) 겁탈하다(劫奪--) 3) 빼앗다 의 의미를 가진다. 도통군자라는 상서로운 기운을 갈머금고 있는 12000봉에 왜 이러한 나쁜 겁살이 끼어있는 것인가? 선천 상극의 기운 때문인가? 비록 도통이라 하여도 천지의 시간이 상극의 시운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 알 수가 없다.
상제님은 김형렬, 김광찬, 이도삼 3명의 종도로 하여금 사방 벽에다 모실 시(侍)자를 12000자 써 붙이도록 명하신다. 이 공사에 등장하는 주문에 주목해 본다. 칠성경이다. 상제님은 아우 영학이 도통하기를 소원하실 때 부채를 그려주시며 칠성경의 무곡파군까지 읽으라고 하셨던 말씀이 연결된다. 청수그릇이 24그릇이 등장한다. 24방위가 연결된다. 또한 시간적으로는 24절기가 연결된다. 칠성경 21번. 이러한 숫자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벽에다 써 붙인 글자가 다른 글자가 아니라 모실 시(侍)자다. 왜 모실 시자 일까? 기존의 해석은 이렇다. 모실 시(侍) 자는 절(寺) 사람(人), 곧 부처를 말한다. 이 공사는 도운과 세운의 도수가 동시에 얽혀 있는 대표적인 공사로, 남조선 도수가 전개되면서 금강산 부처 기운이 걷히고, 그 일만 이천 봉의 정기에 응하여 후천 새 시대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나오는 개벽공사이다. (도전 측주)
모실 시자를 파자하여 절 사람 곧 부처로 말한다면 이 공사는 12000 명의 부처를 내는 공사가 된다. 깨달은 자, 도통한 자가 바로 부처가 아니던가? 일리있는 해석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뜻을 뛰어넘어 모실 시자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고 싶다. 모실 시자는 시천주(侍天主)의 시(侍)자라는 생각이다. 상제님을 제대로 모시는, 상제님을 제대로 신앙하는 그런 12000 명 일꾼들에 대한 공사라는 생각이다. 모신다는 의미를 서교에서는 섬긴다고 말한다. 나는 이 공사는 상제님의 혼이 되고, 상제님의 정신이 되고, 상제님의 수족이 되는 12000 명의 참일꾼이 나오는 공사라고 생각한다.
상제님을 모시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은 상제님의 정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상제님은 누구이신가? 옥황상제이시며 미륵불이시며 천주님이시다. 그런데 그 지존하신 상제님(미륵불, 천주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상제님의 삶과 고독과 눈물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자는 결코 상제님을 제대로 모실 수 없다고 본다. 상제님은 부유하지 않으셨다. 빈한하게 사셨으며, 언제나 못사는 사람,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 편에 다가 가셨다. 스스로 절제하시고, 한 평생을 인류를 위해 당신님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 옥황상제라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드시고, 좋은 가마를 타고, 좋은 신발을 신으시지 않으셨다. 당신님의 아버지는 짚신을 삶게 하셨으며, 어머니의 고추 밭도 팔아서 세상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 있는 재산도 다 흐트리시고 말았다. 불쌍하고 병든 사람을 그토록 많이 살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헛된 도통에 몰두하는 동생은 살려주시지 않으셨다. 우리가 믿는 상제님은 바로 이렇게 공의로우신 상제님이시다.
우리들이 상제님같이 이렇게 극단적인 삶을 살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정신이다. 교단의 최고 지도자로부터 모든 신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일꾼의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교단 자체가 이러한 정신 속에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12000 도통군자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모실 시자의 의미를 보다 심도있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제님은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철저히 자신의 사(私)를 완전히 죽이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부경무청에 잡혀 가셔서 죽도록 맞으신 상제님을 생각해 본다. 수부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상제님이 당신님의 자식을 두셨던가? 그 자식이 세세손손 이어가게 하셨던가? 12000 도통군자를 내는 공사에서 모실 시자, 섬길 시자를 쓰신 것은 봉사하고, 헌신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것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도통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은 큰 틀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진실로 상제님의 정신을 이어받는 교단은 상제님이 삶을 이어받아 이것을 교단차원에서 집행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단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로부터 간부 신도들은 모두 이러한 상제님의 삶과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제님의 눈물, 상제님의 고독, 상제님의 고통을 깊이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찌 12000 모실 시자의 주인공을 꿈꿀 수 있겠는가? 도통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고 본다. 12000 도통이란 나도 상제님 같은 삶을 살겠다는 천지에 대한 서원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다.
상제님은 양(혹은 염소)의 피를 일일이 손으로 묻혀서 글자 하나 하나에 찍으셨다. 상상해 보자. 자그만치 12000 자가 된다. 상제님께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직접 당신 손으로 양의 피를 찍어서 묻혀 흘러내리게 할 때에 상제님은 무엇을 생각하셨겠는가? 이중성 천지개벽경은 흰 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는 맞다고 본다. 상제님은 신미(辛未)생이시기 때문이다. 양의 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상제님의 피를 상징한다. 12000 도통군자는 상제님의 아들 딸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누가 상제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하는가? 그 정신이 상제님을 닮은 자일 것이다. 상제님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상제님과 수부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바치겠다고 서원하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된 구도자가 아니면 개인의 욕심만으로는 절대로 12000 도통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제님께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직접 당신 손으로 양의 피를 찍어서 묻혀 모실 시자 위에 흘러내리게 했을 때에, 상제님은 이미 그 주인공을 일일이 수놓아 보셨다고 믿는다. “비록 장량 제갈이 두룸으로 날지라도 어느 틈에 끼인지 모르리라.”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100년전 금강산 12000봉 겁살 벗기는 공사를 집행하실 때 이미 그 봉우리마다의 주인공은 상제님 차원에서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천지의 일은 때가 이르지 아니하면 사람이 감히 알 수가 없느느라.”(이중성 천지개벽경)
나는 12000 모실시자의 글자를 적어 넣은 종이 크기에도 주목해 본다. 어떤 종이가 크고, 어떤 종이가 작은게 아니다. 똑같은 종이 크기다. 아마도 글자의 크기도 거의 같았을 것이다. 김형렬, 김광찬, 이도삼 3분 종도님께서 정말로 수고 많이 하시면서 공사를 보셨다고 생각한다. 이 공사에 대한 기록에서 이중성 천지개벽경과 도전의 기록은 대순전경과 다르다. 그런데 나는 천지개벽경과 도전의 기록이 대순전경의 그것을 포함하면서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록은 조작이나 왜곡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천지개벽경은 아라사군사가 한경(서울)에 이르게 된다는 세운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병란(兵亂) 병란(病亂)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하고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도전의 기록은 천지개벽경의 기록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붙일 때는 종이가 포개져서도 안 되고 요만치 틈이 있어도 안 되나니 끝이 딱 맞아야 하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다. 상상해 보자. 12000개의 모실 시자를 쓴 종이가 방의 사방 벽에 쭈욱 돌려가며 붙어있는 장관을!! 나는 여기서 더 큰 종이도 없고 더 작은 종이도 없고, 똑같은 크기의 종이가 한치의 틈도 없이 서로 붙여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같은 크기, 같은 글씨, 12000명의 상제님과 수부님의 아들 딸에 대한 공사, 참일꾼에 대한 공사, 이 12000 글자 중에 하나가 소위 대두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통은 누가 주는가? 대두목이 주는가? 12000 도통군자를 내는 주인공은 상제님이시며 그 실무자들은 유불선 각 도통신들일 것이다. 대두목이 도통을 주는게 결코 아니다.
[맺 는 말]
우리는 이 공사에 담겨있는 많은 의미를 유추해 볼수 있다고 본다. 특히 모실 시자의 의미에 나는 주목해 보았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분석해 들어가면 3변교운은 문공신 성도가 주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정음정양도수, 문왕과 이윤도수, 숙구지 도수, 진주노름에 독조사 도수 등등인데, 상제님께서는 “숙구지 도수로 일을 돌린다고 하셨다.” 숙구지 도수가 무엇인가? 잠자는 개를 깨우는 공사다. 잠자는 개는 누구인가? 상제님과 수부님의 진정한 아들 딸이 되고자 하는 참일꾼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딸은 부모를 닮듯이, 상제님과 수부님의 아들 딸은 상제님과 수부님의 정신을 닮고 그것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1928년 무진년은 교운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해라고 생각한다. 그해에 만국대장 박공우 종도는 청음 이상호 선생에게 의통을 전수하였고, 이상호 선생은 동화교를 개창한다. 이해에 천지개벽경를 저술한 이중성 선생이 보천교에 입교를 하였다. 그런데 1928년에 가장 의미깊은 사건은 고수부님께서 숙구지(현재의 화호리) 마을로 행차하셔서, 잠든 개를 깨우시는 공사를 보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부님은 수십명을 데리고 숙구지로 행차하시는데, 마포로 여름살이 옷 30벌을 지어가시고 가셨다. 그 마을 일 잘하는 머슴들에게 입히시고 잠든 개를 깨우는 공사를 보셨다. 나는 오늘의 참일꾼 깨우는 공사라고 생각한다. 이 공사는 안씨재실에서 재직이는 죽은지 사흘이 되는데 핵랑에 봇짐장수 남녀 두사람이 들어있는 공사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오미 개명을 맞이하며 풍류주세백년진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상제님과 수부님을 참되게 모시려는 참일꾼들이 함께 만나기를 기원해 본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아이피 119.♡.137.16 작성일
아틀란티스 13.11.20. 21:58 잘 읽었습니다. 행간에 숨은 뜻이 많은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답글 | 신고 큰통나무 13.11.24. 22:21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가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