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글-장효순(張孝淳)의 난(難)을 통해 본 난법 신앙의 특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119.♡.137.16) 작성일13-12-11 12:18 조회7,179회 댓글0건본문
대순전경 초판본
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第三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18. 갑진(1904)년 정월 십오일에 선생께서 술을 잡수시고 곤히 주무시는데 갑자기 장 흥해의 부친 효순이 찾아와 어린 아이에게 급한 병이 생겨서 죽게 되었으니 와서 살려 주시기를 청하거늘 (해설: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기행이적을 바라고 도문에 듬)
선생께서 혼몽하신 가운데 “냉수나 먹이라.” 말씀하셨더니 효순이 그 말대로 병든 아이에게 냉수를 먹였더니 곧 죽는지라. 효순은 원래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들이 천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터인데 병든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선생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해설: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도를 원망함)
이것은 고의로 약을 잘못 가르쳐 주어 죽게 함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일으키며 말 한 마디로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고치는 것을 내가 직접 본 바이니 만일 고의가 아니라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이라고 하고 (해설:자신의 생각으로 천도를 판단함)
드디어 몽둥이를 가져와서 선생을 마구 치기 시작하니 선생의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한지라. (해설:난법을 펼침)
그제서야 선생이 비로소 깨어 일어나시니 효순이 선생을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끌고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 이끌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 나의 잘못이라, 아이가 급병으로 죽었거늘 어찌 선생을 원망하리오.” 하며 마음을 풀고 옛 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며 자기 집에 함께 가시기를 원하거늘 (해설: 미련이 남아 두 마음으로 거짓 행세함)
선생이 듣지 아니하시고 서 원규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후 이튿날에 전주 이동면 이 직부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흥해의 부친 효순이 선생을 용서하여 장방청에 끌고 가다가 돌아가시게 한 것은 선생께서 백 남신에게 받은 돈 이십 만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이더라. (해설: 결국 도문에 든 목적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임이 드러남)
原文: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스시고 혼몽히 주므실 새 張 興海의 幼兒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어 일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삼하섯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곳 死亡하는지라. 孝淳은 本來 性質이 慓悍하야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 대 病兒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야 先生을 원망하야 가로대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대로 危殆한 病을 곳침은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故意가 아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엿슬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게 하엿슬것이라하고 드대여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야 流血이 淋漓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어 이러나시니 孝淳이 先生을 結縛하야 長房廳으로 갓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느며 가로대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엇거늘 엇지 先生을 원망하리오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늘 先生이 듯지 아니하시고 徐 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에 李 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야 長房廳으로부터 도라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바든 돈 二十萬兩의 證書가 잇슴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 이러라.
參考句節: 갑진 정월 십오일에 선생께서 술을 마이시고 홍몽히 주무실 새 장흥해의 어린 아들이 급병을 발하야 죽게 됨으로 흥해의 부가 선생께 시료하심을 청하거늘, 선생께서 누어 일지 안으시고 혼몽 중에 이르사대 냉수나 먹이라 하셨더니 흥해의 부가 병아에게 냉수를 먹인 후 이어서 그 아이가 죽는지라. 흥해의 부의 성질이 본래 표한하야 부중인이 천동이라고 호하는 터인데 그 아이의 죽음을 보고 크게 성내여 선생을 원망하야 왈 이는 고의로 약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디로 위태한 병을 고침은 내가 실견한 바이라. 만일 우리 아이를 고의로 죽임이 아니었다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이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이라 하고, 드디어 곤봉으로 선생을 난타하야 유혈이 임리케 한지라. 선생께서 비로소 깨달아 일어나시니 흥해의 부가 살인범이라 하고 선생을 결박하야 장방청에 갔다가 문득 뉘우친 듯이 끌러주며 왈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어린아이가 급증으로 죽었거늘 어찌 선생을 원망하리요 하고 전교를 회복하기를 원하고 자기 집으로 동행하랴 하거늘, 선생께서 듣지 아니하시고 서원규 집에 가서 계시다가 익일에 전주 이동면 이직부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흥해의 부가 선생을 용서하야 장방청으로 부터 돌아가게 한 것은 백남신으로 부터 받은 이십만양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랴 함이니라.(甑山天師公事記)
훗날에 이 張 孝淳의 難을 당하신 理由에 대하여 道中이나 家中에 紛爭이 일어 나면 神政이 문란해지고 그것을 그대로 두면 世上에 큰 災殃이 이르게 될 것이므로 내가 스스로 그 기운을 받아 災殃을 해소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시니라. (典經 行錄3章8/ 道典 3篇46/ 眞經 4:4/ 大巡典經解說 2章24)
解說: 이 일을 張孝淳의 難이라고 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냉수먹고 마음돌리라는 이야기와 같이 영혼이 이승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죽으려 하는 아이에게는 냉수한잔이 최선의 약방문인 것이며 효순이 억지로 살려주시기를 청함에 선생께서 애태우는 흥해의 부친에게도 시원한 냉수나 먹고 마음을 돌려서 아이를 포기하라는 뜻으로 그 말을 쓰시니라.(해설: 장효순의 방법으로 도를 공부하는 이는 냉수를 먹고 정신을 차림이 옳다고 하심) 關聯文獻: 典經 行錄3章1,2,3/ 道典 3篇44/ 眞經 4:2/ 大巡典經3版 2章22
19. 다음날 장 효순이 서 원규의 집으로 가서 선생께서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사람을 죽인 자가 도망하였다 하고 사방으로 찾느니라. 이때 선생의 가족은 전주 우전면 화정리 이 경오의 집 곁방에 옮겨 거처하시고 계셨는데 효순의 가족이 화정리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니라. 한편 김 형렬은 장 효순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선생의 소식을 들으려고 화정리에 오니 효순의 집 사람들이 형렬을 결박하여 원규의 집으로 끌고 가서 선생의 행방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화를 내며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라. 이 일로 인하여 선생의 가족들은 태인 굴치로 화를 피해서 이사를 가고 형렬은 원규의 집에서 밤을 이용하여 피하여 도망하고 원규는 매일 계속되는 그들의 행패를 견디지 못하여 약국 문을 닫고 가족을 데리고 익산으로 화를 피해 숨으니라.
(해설 : 그래도 뉘우치지 않고 계속하여 증산 상제님의 처사를 비방함)
原文: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야 殺人犯으로 逃避하엿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엿는대 孝淳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하니라. 金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드르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을 結縛하야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뭇되 가르키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야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일로 因하야 先生의 省率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대지 못하야 藥局을 閉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參考句節: 그 익일에 장흥해의 부가 서원규 집에 간즉, 선생께서 게시지 아님으로 대노하야 선생을 살인범으로서 도피하였다고 사방으로 수색하더라. 이 때에 선생의 성솔은 전주군 화전면 화정리 이경오가 협방에 이거 하여 잇는데, 효순의 가족이 그 곳에 가서 행패 하니라. 김형렬은 당초 효순의 난을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선생의 소식을 들으려고 화정리에 왔다가 효순의 가인에게 결박되야 서원규의 집에 가서 선생의 계신 곳을 묻되 가르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더욱 분노하야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라. (해설 :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자신 뿐 아니라 남까지 끌여들여 해침) 이로 인하야 선생의 성솔은 태인 굴치로 피화하고 형렬은 원규 집에서 승야 도피하고, 원규는 나날이 그들의 행패에 견디지 못하여 약국을 폐쇄하고 가권을 거느리고 익산으로 피하니라.(甑山天師公事記)
이보다 먼저 선생께서 전주에 가시어 부친의 小室인 천원 장씨에게 “술을 빚으라.” 이르시고 “누구든지 술을 먼저 맛보지 말라.” 하고 거듭 당부하셨는데 (해설 : 때아닌 도통과 개벽의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 말라 하심) 어느날 선생의 부친께서 오시자 장씨가 선생의 말씀을 잊고 웃 술을 먼저 떠서 드린지라. 얼마 후에 선생께서 돌아오셔서 술에 먼저 손댄 것을 꾸짖으시고 “가족들이 급히 피하여야 화를 면하리라.” 말씀하시고 (손댄 것을 아시고 “누가 술을 마시라고 했느냐.” 물으시니 장씨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손대었다고 거짓말을 하매 “큰 일 났으니 빨리 피하라”고 말씀 하시고) 나가시니라. 잠시 후에 효순의 가족들이 달려와 장씨에게 “선생의 모친이냐.” 고 추궁하자 장씨가 당황하여 “내가 바로 모 친이라.” 하니 효순의 가족들이 수 없이 구타하니 이때에 낯 모르는 백발 노인이 옆에 서 있다가 말하기를 “자식의 잘못으로 부모에게 폭행한다는 것이 사람으로 할 짓이냐.” 하고 꾸짖자 그제서야 효순부자가 물러가니라. 그 뒤에 선생께서 장 씨에게 들러 전후 사정을 들으시고 “生地黃의 즙을 내어 상처에 바르시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행하여 그 날로 몸이 회복되니라.(典經 行錄3章7, 道典3篇45)
갑진(1904)년 6월에 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어 형렬에게 전주로 가서 김병욱을 만날 약속을 하고 돌아오게 하시니라. 형렬이 돌아오는 길에 장 흥해의 부친 효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을 선생께 말씀드리면서 “장 효순은 벌써 우리 손에 죽었어야 마땅하거늘 저절로 죽었으니 어찌 하늘의 道가 공정하다고 하오리까.” 하니 선생께서 들으시고 “그것이 무슨 말이냐. 죽은 사람은 불쌍하니라.” 하시며 형렬을 꾸짖으시니라. (해설 : 난법난도자의 종말은 영혼의 비참한 죽음임을 보이심)그 이튿날 선생께서 병욱과의 약속이 있으심에도 전주부로 가시지 않고 형렬을 데리고 고부로 향하시니 형렬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병욱과의 약속을 어기시는 이유를 여쭈었으나 선생께서는 웃으시며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典經 行錄3章13)
甲辰 六月에 金 亨烈의 집에 이르사 亨烈다려 全州府에 가서 金 秉旭에게 만날 期會를 約定하고 오라 命하시니 亨烈이 領命하고 全州에 가서 秉旭을 만나 그 翌日 夜半에 만나기로 約定하고 도라오는 길에 張 孝淳의 死亡한 消息을 들은 지라. 亨烈이 先生 復命하고 이어서 孝淳의 死亡을 報하야 가로대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어야 할 것인대 절로 病死하엿스니 恨스러운 일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것이 무슨 말이뇨 죽은 사람은 불상하니라 하시니라.(大巡典經 4章4)
하루는 종도들이 여쭈어 가로대 선생의 권능으로 어찌 장 효순의 난을 당하였나이까 선생께서 가라사대 교중(敎中)에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紊亂)하여 지나니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므로 내가 스스로 그 기운을 받아서 해소함이로다 하시니라. (장 효순난 직전에 고부 가정에 분란이 있었음)
(大巡典經3版 2章24, 眞經 4:4)
註解: 夾室은 안방 또는 主가 되는 방에 딸린 방으로 곁방이라고도 한다.
生地黃은 지황뿌리의 날것으로 맛은 달고 쓰다. 瀉火, 生津, 凉血에 효능이 있으 며 주로 血症을 다스리는데 쓰며 말린 것을 숙지황이라 한다. (해설: 제 멋대로 도를 닦는 이는 혈기를 다스려야 함을 보이심)
關聯文獻: 典經 行錄3章4,5,6/ 道典 3篇45,46/ 眞經 4:3/ 大巡典經3版 2章23/現代의 漢方(현대한방연구소,1985)
거북이 13-10-28 10:53 댓글상단
장효순과 같은 일련의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답댓글
복록신님의 댓글
복록신 13-10-28 14:29 댓글상단
난법시대의 참혹함을 예견한듯합니다
가슴아픈 일이기도 하고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답댓글
신비전님의 댓글
신비전 13-10-31 11:40 댓글상단
분석하신 내용이 정말로 공감갑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분석을 할수 없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푸른글님께서 정확히 분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