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진법-太田론]상제님이 밝힌 '콩밭(太田)은 대전아닌 태을주밭(太田)의 비밀"과 후천수도 용화동 _예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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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114.♡.206.36) 작성일13-12-07 14:15 조회9,970회 댓글0건본문
작성일13-06-23 00:59 조회550회 댓글16건
[증산진법-太田론]상제님이 밝힌 '콩밭(太田)은 대전아닌 태을주밭(太田)의 비밀"과 후천수도 용화동
(모 사이트에 있는 글을 재편집해 올린 내용입니다.)
증산상제님이 말씀하신 콩밭의 진정한 의미는 태을주 수련이며,예언서에 나온 이재전전의 의미는 지명이 아니라고 여러 예언서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또한,상제님과 태모님이 밝힌 후천의 수도는 용화동이라는 사실이 수없는 기록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성지 취급된 상황이 현 주소이다.이에 그 상제님 말씀을 왜곡한 리얼한 과정과 예언서의 허황되고 황당한 해석을 바로 잡고자 한다.
1.증산상제님은 콩밭을 태을주 판이라 해석했으며 한자로 옮겨 태전(太田)으로 불렀을 뿐이다.
특정 증산교단에서는 콩밭을 알 수 있는 여러구절의 성구를 일체 배제하고 오직 대전(태전)으로 해석하는 편집기법을 적용했다.다른 의미를 알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전후 성구배열을 했을뿐 아니라 콩밭과 태전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이에 콩밭의 진정한 의미와 한자로 옮긴 태전의 의미를 찾아 본다.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상씨름할 사람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太田)에서 잠을 자며 판을 넘겨다보는 법이니라. 콩밭(太田)은 태을주(太乙呪) 판이고 태을주는 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이니,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상제님은 <콩밭>을 <태을주가 만드는 세상(판)>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그리고 태을주 수도를 하고 때를 지켜보는 것을 콩밭에서 낮잠 자는 것으로 비유했다.결국 쌍씨름 판의 종결은 질병으로 끝나기 때문에 상씨름 전쟁=태을주 전쟁이며 이것을 태전이라고 한 것이다.이러한 내용이 도전에 옮겨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즉 콩밭은 태전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불리한 내용은 일체 적지 않는 것이다.이는 비단 도전뿐 아니라 예언서에도 적용된다.상제님 말씀을 전하는 다른 책에서도 같은 결론이라는 것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말씀하시기를 "훔치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는 것은 곧 우리가 한알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는 곧 인의예지니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는 말이니,천주님을 떠나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니라. 약은 곧 태을주라." 또 말씀하시기를 "상씨름할 사람은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에서 잠을 자고 판을 넘어다 보는 법이니라. 콩밭은 곧 태을주판이고,태을주는 곧 구축병마주니라." (용화전경)
결국 씨름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소를 상금으로 가지는데 이러한 사실을 비유하여,전쟁대결에서 태을주라는 것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상씨름판에 나타난 태을주를 소가 나간다고 했다.쌍씨름판에 나가기 위해 태을주 판을 준비하라는 것이다.이러한 준비과정을 콩밭에서 낮잠 자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대전(大田)에서 잠을 자며 준비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태을주로 승리하는 판세를 소이며 <판>으로 묘사한 부분을 도전에서는 찾아 볼 수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천은 축(丑)판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2:144)
또 말씀하시기를 “훔치는 소울음 훔 자이니라. 나는 소체니라. 장차 소가 나와서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니라. 소가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지고 나오리라.” 하시니라.( 道典 5:308)
상제님은 태을주가 소울음 소리이자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도구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을주 구원결론'이 선천을 후천으로 넘기는 하도낙서의 역활을 하는 것은 물론,상씨름을 승리로 만드는 상징으로 보았다.
쌍씨름판=태을주 판=소판=축판=태전=콩밭
잘못된 성구해석의 불명예 전설이자 15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도 철회되지도 않는 주장은 정주영의 소때 방북 사건이다.<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道典 5:7)>에서 나타난 소가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소때를 이끌고 방북하는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지금 되돌아 보면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곧 개벽이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2. 콩밭공사는 태을주밭인 태전공사로 해석해야 한다.
지명 태전이 아닌 콩밭공사를 태전공사라고 보고 상제님 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태전을 지명으로 해석하도록 색안경을 쒸운 것이다.
1 일찍이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성도들을 약방 울타리 밖으로 불러내시어 씨름을 시키시더니
2 태전에 오시어 상씨름의 결판을 짓게 하시니라.
3 이 때 동서남북 사방에 방주를 두고 여덟 명이 힘을 겨루는데
4 끝판으로 공우와 경석이 시합을 하여 공우가 일등을 하거늘
5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상으로 태극 문양이 들어간 한 돈짜리 금구슬을 주시니라.
6 상제님께서 보름 동안의 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시고 구릿골로 돌아오시니라.
(道典 5:314)
위 내용을 보면,<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 태전에서 콩밭 공사를 본 것으로 오해하도록 편집하고 있다.첫번째 <태전에 오시어~>은 <콩밭에 오시어~>야 한다.왜냐하면 울타리 밖으로 불러 내는데 그곳이 태전이라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태전이 아닌 콩밭로 대입하면 약방 울타리 밖 콩밭에서 씨름을 시킨 것이다.울타리 밖인데 왜 태전일까? 몇번을 읽어도 이해 안되는 것을 콩밭으로 고치니 바로
이해된다.누가 바꾸었을까?도대체 무슨 의도로?이러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치밀하게 지능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보름 동안의 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시고~>는 <반나절 동안의 콩밭(太田)공사를 마치시고~>를 왜곡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콩밭 앞에 태전이라는 말을 억지로 넣다보니 구릿골과 대전은 거리가 멀기때문에 보름으로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처음부터 대전에서 공사를 보았으면 약방 울타리 밖이라는 말이 안 나왔을 것이다.난해한 수학문제 푸는 것이 아닌 쉬운 소설책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1 무신년 가을에 상제님께서 수부(首婦)님과 김형렬, 김갑칠, 박공우, 문공신, 안내성, 차경석 등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태전 콩밭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
2 상제님께서 회문산에 이르시어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여기가 어디냐?” 하시니 공우가 “순창 회문산입니다.” 하고 아뢰니라.
3 공우가 상제님께 여쭙기를 “여기는 무슨 도수를 보러 오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오선위기 도수를보러 왔다.” 하시고
(道典 5:296)
위 내용을 보면,<태전 콩밭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인데 태전으로 콩밭공사를 보러 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문산으로 콩밭(태전)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가 맞는 표현이다.즉 세운의 마지막 결론이 태을주 판몰이이기 때문이다.
3. 대전(태전)에서 도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태을주 판몰이>에서 도인이 나온다
1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큰 데 가지 말아라. 보리밥 한 술에도 도통이 있느니라.
2 장차 초막에서 성현(聖賢)이 나오리라.” 하시고
3 다시 “일초(一招), 이초(二招), 삼초(三招) 끝에 대인(大人) 행차하시는구나.” 하고 노래하시니라.
4 태모님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상씨름판에는 콩밭(太田)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 하시니라.
( 道典 11:413)
위 내용을 보면,<상씨름판에는 콩밭(太田)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를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다.쌍씨름판(전쟁이 터지는 시기에는 괴질이 도는데)에는 콩밭(병겁으로 전쟁을 막고 태을주로 사람들을 살리는 판몰이)에서 엉뚱한 인물(대리 대두목일 수 있고,태을주로 상제님 강령을 받은 도인들)이 나온다로 해석해야 한다.태전이 지명이 아니라 태을주밭(태을주판몰이)이 맞다는 것을 아래와 같은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1 하루는 김락원의 제자 노진구(魯鎭玖)가 락원에게 불쑥 묻기를 “콩밭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거늘
2 락원이 “자네 그것도 해석 못 하는가?” 하니 진구가 “성인이 해 놓으신 것을 제가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말씀을 한번 해 주시죠.” 하매
3 락원이 “거기에서 큰 도인이 나오네. 도가 일어나네.” 하니라.
4 이에 진구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지요!” 하니
5 락원이 정색을 하며 꾸짖기를 “데끼! 때가 있는 것이네. 다 정해 놓고 나오는 것이네.” 하니라.
(道典 10:132)
위 내용을 보면,노진구라는 사람이 <거기에서 큰 도인이 나오네?>라는 말을 듣자 지명인 줄 알고 찾아가려고 다시 물어보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자, 태전은 <태을주 판몰이>이기 때문에 질병이 나오는 시기를 기다리라고 하면서 <데끼! 때가 있는 것이네.>라고 말한다.즉 이 무식한 놈아!태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태을주판이 열리는 시기를 기다려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콩밭에서 도인이 나오는 글을 보고 대전에서 도인이 나온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노진구의 생각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상제님께서 금산사를 집처럼 자주 가시는데 상제님께서 가시면 금산사 중들이 “미륵존불, 미륵존불.” 하고불공을 드리니라.
2 4월에 하루는 금산사로 가시는 길에 계룡봉(鷄龍峯) 옆을 지나시며 말씀하시기를
3 “태전(太田)은 현룡재전(見龍在田)이요 여기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라.” 하시고
4 금산사에 이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미륵불은 혁신불(革新佛)이니라.” 하시니라.
5 또 “여기가 배코같이 된다.” 하시고 천왕문(天王門), 시왕전(十王殿), 삼성각(三聖閣), 나한전(羅漢殿)으로다니며 제를 지내시니라.
( 道典 3:84)
위 내용을 보면<태전(太田)은 현룡재전(見龍在田)이요>라고 나온다.이것을 태전이 아닌 콩밭이나 <태을주 판몰이>로 해석해 본다면,태을주 판몰이가 되는 상황에서는 상제님의 재림을 상징하는 용이 나타난 것이다.이를 현룡재전(見龍在田)이라고 한 것이다.즉 태을주 판몰이(在田)에서 용이 나타난다(見龍)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금산사 미륵불은 이미 어천했기 때문에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다(在天)는 뜻이다.
3 피란은 콩밭(太田) 두둑에서 하느니라.
4 태전(太田)이 문턱이니라.
( 道典 7:43)
위 내용을 보면,피란은 콩밭에서 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콩밭이 대전인줄 알고 대전 주위에서 생활하는 특정교단의 신앙촌을 보는 것 같다.피란은 태을주 수도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태을주 수도(콩밭)가 난을 피하는 문턱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전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엄청나게 많은 공사를 보아야 하는데.콩밭공사만 있고 대전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공사가 거의 없다.있다고 한다면 천자부해상 공사를 위해 지리적 중심지인 대전역을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공사를 오가는 과정에서 대전을 거쳐 왔다는 내용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소설같은 대전공사는 다른 곳에서 하는 공사 내용이 장소만 바꾸어 등장한다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있다.대전의 신격화를 위해 지명이나 산이름이 등장할뿐 별다른 내용이 없고 왠지 허술하기 짝이없는 느낌이 배어난다.그리고 다른 책에서 전혀 볼 수 없고 성도의 증언에서도 증명할 수 없는 독특한 명당론에 관한 내용들이 공통점이다.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검증과정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전이 콩밭이 아니기때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지나친 과장이나 부풀리기가 문제인 것이다.상제님에 관한 다른 책을 볼 때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그 단체의 종통과 관련된 내용은 일단 배제하거나 조작된 내용이라는 전제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받아들여도 된다.
4.상제님이 밝히신 후천수도 용화동의 전모
후천수도와 조화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과정이 일체 생략된 특정교단의 가르침이 대세이며,단순히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성지 수순으로 격하시키고 있다.그러나 실리지 않는 이면적인 내용과 조화정부의 위치 자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나는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와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을 수도의 도성으로 삼나니, 한양보다 일곱배나 넓은 도성에서 문무백관이 정사를 보게 되리라. 부서 한 장이면 산 하나를 옮기리니 내세상에서는 서해로 땅을 넓히노라. 내가 거하는 대시국 수도의 북문은 전주에 세워지노라. 때가 되면 금산사는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 천지개벽경)
오성산은 만국 영사관 자리요, 서대문 팔십리는 저기 있는 계화도요, 평사리는 나의 평상이니라. (선도신정경)
위 내용을 보면 후천수도에 대한 구역과 위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금산사 사답칠두처럼 7개 지역의 기운을 받아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지역에 수도를 정하고 만국 영사관 자리는 오성산에 배치하고 수도의 서방인 서대문 지역은 계화도 방조제 지역에 설정하고,수도의 북방인 북문은 전북에 설정한다고 나온다.
방위가 틀리는 것은 개벽이후 지축 정립에 대한 예상까지 한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개벽이후 서해로 땅이 커진다고 보았을때 전주-군산지역으로 이동해야 중국과 한국 일본의 중심지로 부상한다고 판단한다.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고 하는 말과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長廣)이 팔십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전체적인 큰 그림을 다시 그려보면,금산사와 용화동 그리고 배후지 원평은 청와대와 정부청사 그리고 각종 관공서가 밀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이곳을 벗어나면 교육도시 시설인 용화도장구역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유학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알 수 있다.이 모든 것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배치된 것이며 여기에는 대전은 전혀 언급이 안될뿐 아니라 배후 위성도시 역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청풍명월금산사가 나오는 구절을 담고 있는 두 책을 비교해 보면 무슨 단서가 나올 것이다.
태전의 상징은 보천교 시절에 태을주 기운이 가득한 태을주밭으로 판단해야 하며 용화동 일대가 콩밭으로 보아야 한다.전봉준 장군의 노래로 알려진 파랑새와 녹두장군의 의미도 팔왕을 뜻하는 전주(八+王=全)이며 녹두장군의 별명도 콩(두-豆)을 의미한다.즉 태을주 기운이 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1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2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3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4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5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6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道典 5:306)
매양 구릿골 앞 큰 나무 밑에서 소풍하실 새, 금산안과 용화동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곳이 나의 기지라.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인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천황지황인황후(天皇地皇人皇後)천하지대금산사(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씀하시고, 또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 도술운통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라고
외우시고, 또 "세계유이차산출(世界有而此山出) 기운금천장물화(紀運金天藏物華)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를 외우시니라.(대순전경)
위 내용을 보면,제왕지기가 나올 땅이라고 말한 당시 지명이 어디일까?대순전경에서는 구릿골 앞이라고 나온다.구릿골 앞에서 보면 제비산이 있고 계룡봉이라는 지명지 존재한다.즉 제비산(帝妃山)은 황제의 왕비를 의미하기도 한다.후일 태모(천황후) 고수부님은 "증산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증 산 도 오시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오성산 봉웃재에 장사를 지냈고,이후 1961년에 제비산(帝妃山)중턱에 이장했다. 이 내용은 상제님 공사에도 나오는데 나갔던 제비는 황제의 왕비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고수부님의 장지 이장을 말한다.인신합덕은 아니지만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음양합덕이 된 셈이다.
5 하루는 제비산(帝妃山)을 바라보시며 “제비산에 배가 올라와야 일이 되느니라. 나갔던 제비가 다시들어오리라.” 하시고
6 말씀하시기를 “개벽은 기둥 하나 안고 도는 동안에 된다.” 하시니라.
7 하루는 상제님께서 “제비산에 대어 본다.” 하시며 성도들을 간짓대처럼 이어서 높이 세워 놓으시니라.
( 道典 7:70)
증산상제님은 먼 훗날 이곳에서 세계조화정부의 청와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공사를 보신다.제비산은 황제의 왕비가 나오는 의미도 있지만 <황제의 창업을 하는 계곡>을 뜻하는 의미를 실어 제업창곡 공사를 본 것이다.그러므로 제왕지지란 대전이 아닌 용화동과 금산사 일대를 의미한다.
9 말씀하시기를 “옛집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니라. 이곳은 제비창골이 아니요 제업창골(帝業創谷)이니라.”하시니라.
10 하루는 하운동에 사는 박성태(朴成台)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제비창골에 날마다 백 명씩은왕래하리라.” 하시고
11 “그러나 여지가 좋지 못하다.” 하시니라.
( 道典 3:13)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에서 나오는 오로봉은 어디를 말하는가? 태모(천황후) 고수부님이 세 교단을 마치고 마지막에 은거한 산을 의미한다.증산상제님은 천하의 아버지산인 회문산에서 오선위기(五仙圍碁)바둑판에 맞춰 단주수명 공사를 보았고,고수부님도 오성산(五聖山)에 바둑판을 묻어 오선위기의 기운을 오성산으로 옮기는 공사를 보았다.
오성산(五聖山)은 당나라 소정방에 저항하여 바둑을 두던 다섯명의 백제 노인들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의미에서,오성인(五聖人)이 묻혀있는 산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오성산 아래의 마을 이름이 요임금의 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성덕리(成德里)'라고 했고, 성덕리 주변을 서쪽에 있는 요임금 동네라는 뜻으로 '서요동(西堯洞)'이라고 불렀으며 서요동 모래언덕을 상제님의 다른 이름인'사옥(紗玉)재'라고 불렀다.
증산상제님은 후천의 요임금이라고 말씀하셨으며,당요가 사는 구역을 요동(堯洞)이라고 부른 것이다.용화동이 동요동이고 오성산이 서요동이며 이곳이 바로 후천 수도의 영역인 것이다.이 영역과 인연이 되는 내용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다.<오로봉전이십일>이 <오로봉전태전>으로 되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맞는다는 가정을 한다면,오선위기의 중심기운이 담긴 오로봉의 핵심이 <태을주 판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설마 오성산이 태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2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3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4 허미수(許眉?)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5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36)
위 내용을 보면,같은 곳에서 연이어 하는 말이 아니고 두가지 내용을 병합한 것을 알 수 있다.<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라는 의미는 <태을주판몰이>이 상황이고<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라는 것은 <후천선경의 푯대를 콩밭(태을주밭)>에 꽂았느니라가 맞는 표현이다.그리고 그 공사를 본 지명이 대전이 아닌 용화동이며 용화동에서 많은 신도들이 태을주 수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태을주밭인 것이다.그래서 이곳이 태을주밭이고 후천수도라고 한 것을 의미한다.당연히 새서울이라고 한 것은 현 서울이 아닌 전주중심의 용화동 콩밭(신앙의 근거지)을 의미한 것이다.
5.태모(천황후)님과 이상호.고민환 성도와 애기한 태전은 대전지명이 아니다.
1 태모님께서 용화동에 계실 때 천지에서 신도가 크게 내리매 여러 차례 용봉(龍鳳)을 그려 깃대에 매달아
놓으시고 공사를 행하시더니
2 용화동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 다시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두시고 이상호에게 이르시기를
3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고 “용봉기를 꼭 꽂아 두라.”
하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4 또 말씀하시기를 “용화동은 동요동(東堯洞)이요, 건곤(乾坤)의 사당(祠堂) 자리이니 미륵이 다시 서니라.
5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나니 법은 서울로부터 내려오는 것 아니더냐.
6 앞으로 태전(太田)이 서울이 되느니라.” 하시고
7 “사람 욕심 내지 마라. 올바른 줄 하나 치켜들면 다 오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1:365)
위 내용을 보면,이상호와 고수부님의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태전(太田)이 서울>이라는 말에서 본다면 태전이 대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용화동이 콩밭이자 태전이라고 애기한 것이다.만일, 대전지역이 서울이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대전으로 도장 살림을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사람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 연이어 나온다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서울로 가면 더 많은 사람을 포교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누그러 뜨리는 경고인 것이다.
용화동이 상제님이 말한 콩밭이자 후천 수도라는 것을 당부하면서 사람이 적어도 여기를 지키고 생활하라는 의미이다.그러나 이상호 이정립 형제는 고수부님의 말을 듣지 않고 해방이후 서울에서 증산교대법사(동화교 후신)을 차린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 욕심을 내어 용화동을 떠날 것을 암시한 것이다.
태전이 서울된다는 말은 용화동 태을주밭이 서울된다는 말임일 알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오고 간 것이다.만일 이상호가 대전이 서울된다고 알았다면 서울에서 본부를 두지 않고 대전으로 갔을 것이다.
1 이 해 8월 17일 초저녁에 고민환이 태모님의 산소 일로 홀로 번민하다가
2 문득 정신이 황홀하고 혼몽한 중에 심신(心神)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함열(咸悅)에 사는 연기종(延基宗)의
집에 도착하니
3 태모님께서 생존 시와 같이 손에 담뱃대를 들고 그 집 마당에 서 계시는지라
4 민환은 태모님께서 선화하신 후에 어떠한 영적 감화도 주지 않으심에 원망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불경한 언사로 “어찌하여 여기 와 계시오?” 하니
5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디를 못 가리오.” 하시며 “지명(地名)을 취하여 왔노라.” 하시니라.
6 이에 민환이 심사(心思)가 나서 말하기를 “그러면 저는 태전(太田) 갈라오.” 하니
7 태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얼굴로 말씀하시기를 “또 올 터인데 무얼.” 하시며 보이지 않으시니라.
( 道典 11:425)
위 내용을 보면,고민환 성도가 대전으로 간다는 말을 했다면 태전의 비밀을 대전으로 착각했다는 말이다.그리고 태모님이 <또 올 터인데 무얼>이러고 대답했다면 대전이 아닌 줄 알고 다시 올 것이라는 예언적 훈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예언서에 나온 이재전전을 대전으로 해석하고 대전이 태전일 것이라고 확대해서 해서 특정교단이 대전에서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상제님이 밝힌 태전은 지명이 아닐뿐 아니라,대전의 최초 옛지명이 대전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이 태전이 되어야 만 이유는 증산상제님이 밀한 콩밭이 태전으로 불리기 때문에 대전이 태전으로 되어야만 된다는 욕심에서 일어난 일이다.올바른 진법해석이 아닌 난법해석으로 인한 아집의 강행이다.이제는 상제님이 밝힌 용화동 후천수도도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 사이트에 있는 글을 재편집해 올린 내용입니다.)
증산상제님이 말씀하신 콩밭의 진정한 의미는 태을주 수련이며,예언서에 나온 이재전전의 의미는 지명이 아니라고 여러 예언서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또한,상제님과 태모님이 밝힌 후천의 수도는 용화동이라는 사실이 수없는 기록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성지 취급된 상황이 현 주소이다.이에 그 상제님 말씀을 왜곡한 리얼한 과정과 예언서의 허황되고 황당한 해석을 바로 잡고자 한다.
1.증산상제님은 콩밭을 태을주 판이라 해석했으며 한자로 옮겨 태전(太田)으로 불렀을 뿐이다.
특정 증산교단에서는 콩밭을 알 수 있는 여러구절의 성구를 일체 배제하고 오직 대전(태전)으로 해석하는 편집기법을 적용했다.다른 의미를 알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전후 성구배열을 했을뿐 아니라 콩밭과 태전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이에 콩밭의 진정한 의미와 한자로 옮긴 태전의 의미를 찾아 본다.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상씨름할 사람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太田)에서 잠을 자며 판을 넘겨다보는 법이니라. 콩밭(太田)은 태을주(太乙呪) 판이고 태을주는 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이니,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상제님은 <콩밭>을 <태을주가 만드는 세상(판)>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그리고 태을주 수도를 하고 때를 지켜보는 것을 콩밭에서 낮잠 자는 것으로 비유했다.결국 쌍씨름 판의 종결은 질병으로 끝나기 때문에 상씨름 전쟁=태을주 전쟁이며 이것을 태전이라고 한 것이다.이러한 내용이 도전에 옮겨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즉 콩밭은 태전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불리한 내용은 일체 적지 않는 것이다.이는 비단 도전뿐 아니라 예언서에도 적용된다.상제님 말씀을 전하는 다른 책에서도 같은 결론이라는 것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말씀하시기를 "훔치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는 것은 곧 우리가 한알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는 곧 인의예지니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는 말이니,천주님을 떠나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니라. 약은 곧 태을주라." 또 말씀하시기를 "상씨름할 사람은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에서 잠을 자고 판을 넘어다 보는 법이니라. 콩밭은 곧 태을주판이고,태을주는 곧 구축병마주니라." (용화전경)
결국 씨름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소를 상금으로 가지는데 이러한 사실을 비유하여,전쟁대결에서 태을주라는 것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상씨름판에 나타난 태을주를 소가 나간다고 했다.쌍씨름판에 나가기 위해 태을주 판을 준비하라는 것이다.이러한 준비과정을 콩밭에서 낮잠 자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대전(大田)에서 잠을 자며 준비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태을주로 승리하는 판세를 소이며 <판>으로 묘사한 부분을 도전에서는 찾아 볼 수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천은 축(丑)판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2:144)
또 말씀하시기를 “훔치는 소울음 훔 자이니라. 나는 소체니라. 장차 소가 나와서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니라. 소가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지고 나오리라.” 하시니라.( 道典 5:308)
상제님은 태을주가 소울음 소리이자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도구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을주 구원결론'이 선천을 후천으로 넘기는 하도낙서의 역활을 하는 것은 물론,상씨름을 승리로 만드는 상징으로 보았다.
쌍씨름판=태을주 판=소판=축판=태전=콩밭
잘못된 성구해석의 불명예 전설이자 15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도 철회되지도 않는 주장은 정주영의 소때 방북 사건이다.<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道典 5:7)>에서 나타난 소가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소때를 이끌고 방북하는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지금 되돌아 보면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곧 개벽이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2. 콩밭공사는 태을주밭인 태전공사로 해석해야 한다.
지명 태전이 아닌 콩밭공사를 태전공사라고 보고 상제님 말씀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태전을 지명으로 해석하도록 색안경을 쒸운 것이다.
1 일찍이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성도들을 약방 울타리 밖으로 불러내시어 씨름을 시키시더니
2 태전에 오시어 상씨름의 결판을 짓게 하시니라.
3 이 때 동서남북 사방에 방주를 두고 여덟 명이 힘을 겨루는데
4 끝판으로 공우와 경석이 시합을 하여 공우가 일등을 하거늘
5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상으로 태극 문양이 들어간 한 돈짜리 금구슬을 주시니라.
6 상제님께서 보름 동안의 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시고 구릿골로 돌아오시니라.
(道典 5:314)
위 내용을 보면,<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 태전에서 콩밭 공사를 본 것으로 오해하도록 편집하고 있다.첫번째 <태전에 오시어~>은 <콩밭에 오시어~>야 한다.왜냐하면 울타리 밖으로 불러 내는데 그곳이 태전이라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태전이 아닌 콩밭로 대입하면 약방 울타리 밖 콩밭에서 씨름을 시킨 것이다.울타리 밖인데 왜 태전일까? 몇번을 읽어도 이해 안되는 것을 콩밭으로 고치니 바로
이해된다.누가 바꾸었을까?도대체 무슨 의도로?이러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치밀하게 지능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보름 동안의 태전 콩밭 공사를 마치시고~>는 <반나절 동안의 콩밭(太田)공사를 마치시고~>를 왜곡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콩밭 앞에 태전이라는 말을 억지로 넣다보니 구릿골과 대전은 거리가 멀기때문에 보름으로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처음부터 대전에서 공사를 보았으면 약방 울타리 밖이라는 말이 안 나왔을 것이다.난해한 수학문제 푸는 것이 아닌 쉬운 소설책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1 무신년 가을에 상제님께서 수부(首婦)님과 김형렬, 김갑칠, 박공우, 문공신, 안내성, 차경석 등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태전 콩밭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
2 상제님께서 회문산에 이르시어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여기가 어디냐?” 하시니 공우가 “순창 회문산입니다.” 하고 아뢰니라.
3 공우가 상제님께 여쭙기를 “여기는 무슨 도수를 보러 오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오선위기 도수를보러 왔다.” 하시고
(道典 5:296)
위 내용을 보면,<태전 콩밭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인데 태전으로 콩밭공사를 보러 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문산으로 콩밭(태전) 도수를 보러 떠나시니라>가 맞는 표현이다.즉 세운의 마지막 결론이 태을주 판몰이이기 때문이다.
3. 대전(태전)에서 도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태을주 판몰이>에서 도인이 나온다
1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큰 데 가지 말아라. 보리밥 한 술에도 도통이 있느니라.
2 장차 초막에서 성현(聖賢)이 나오리라.” 하시고
3 다시 “일초(一招), 이초(二招), 삼초(三招) 끝에 대인(大人) 행차하시는구나.” 하고 노래하시니라.
4 태모님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상씨름판에는 콩밭(太田)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 하시니라.
( 道典 11:413)
위 내용을 보면,<상씨름판에는 콩밭(太田)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를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다.쌍씨름판(전쟁이 터지는 시기에는 괴질이 도는데)에는 콩밭(병겁으로 전쟁을 막고 태을주로 사람들을 살리는 판몰이)에서 엉뚱한 인물(대리 대두목일 수 있고,태을주로 상제님 강령을 받은 도인들)이 나온다로 해석해야 한다.태전이 지명이 아니라 태을주밭(태을주판몰이)이 맞다는 것을 아래와 같은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1 하루는 김락원의 제자 노진구(魯鎭玖)가 락원에게 불쑥 묻기를 “콩밭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거늘
2 락원이 “자네 그것도 해석 못 하는가?” 하니 진구가 “성인이 해 놓으신 것을 제가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말씀을 한번 해 주시죠.” 하매
3 락원이 “거기에서 큰 도인이 나오네. 도가 일어나네.” 하니라.
4 이에 진구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지요!” 하니
5 락원이 정색을 하며 꾸짖기를 “데끼! 때가 있는 것이네. 다 정해 놓고 나오는 것이네.” 하니라.
(道典 10:132)
위 내용을 보면,노진구라는 사람이 <거기에서 큰 도인이 나오네?>라는 말을 듣자 지명인 줄 알고 찾아가려고 다시 물어보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자, 태전은 <태을주 판몰이>이기 때문에 질병이 나오는 시기를 기다리라고 하면서 <데끼! 때가 있는 것이네.>라고 말한다.즉 이 무식한 놈아!태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태을주판이 열리는 시기를 기다려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콩밭에서 도인이 나오는 글을 보고 대전에서 도인이 나온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노진구의 생각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상제님께서 금산사를 집처럼 자주 가시는데 상제님께서 가시면 금산사 중들이 “미륵존불, 미륵존불.” 하고불공을 드리니라.
2 4월에 하루는 금산사로 가시는 길에 계룡봉(鷄龍峯) 옆을 지나시며 말씀하시기를
3 “태전(太田)은 현룡재전(見龍在田)이요 여기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라.” 하시고
4 금산사에 이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미륵불은 혁신불(革新佛)이니라.” 하시니라.
5 또 “여기가 배코같이 된다.” 하시고 천왕문(天王門), 시왕전(十王殿), 삼성각(三聖閣), 나한전(羅漢殿)으로다니며 제를 지내시니라.
( 道典 3:84)
위 내용을 보면<태전(太田)은 현룡재전(見龍在田)이요>라고 나온다.이것을 태전이 아닌 콩밭이나 <태을주 판몰이>로 해석해 본다면,태을주 판몰이가 되는 상황에서는 상제님의 재림을 상징하는 용이 나타난 것이다.이를 현룡재전(見龍在田)이라고 한 것이다.즉 태을주 판몰이(在田)에서 용이 나타난다(見龍)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금산사 미륵불은 이미 어천했기 때문에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다(在天)는 뜻이다.
3 피란은 콩밭(太田) 두둑에서 하느니라.
4 태전(太田)이 문턱이니라.
( 道典 7:43)
위 내용을 보면,피란은 콩밭에서 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콩밭이 대전인줄 알고 대전 주위에서 생활하는 특정교단의 신앙촌을 보는 것 같다.피란은 태을주 수도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태을주 수도(콩밭)가 난을 피하는 문턱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전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엄청나게 많은 공사를 보아야 하는데.콩밭공사만 있고 대전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공사가 거의 없다.있다고 한다면 천자부해상 공사를 위해 지리적 중심지인 대전역을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공사를 오가는 과정에서 대전을 거쳐 왔다는 내용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소설같은 대전공사는 다른 곳에서 하는 공사 내용이 장소만 바꾸어 등장한다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있다.대전의 신격화를 위해 지명이나 산이름이 등장할뿐 별다른 내용이 없고 왠지 허술하기 짝이없는 느낌이 배어난다.그리고 다른 책에서 전혀 볼 수 없고 성도의 증언에서도 증명할 수 없는 독특한 명당론에 관한 내용들이 공통점이다.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검증과정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전이 콩밭이 아니기때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지나친 과장이나 부풀리기가 문제인 것이다.상제님에 관한 다른 책을 볼 때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그 단체의 종통과 관련된 내용은 일단 배제하거나 조작된 내용이라는 전제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받아들여도 된다.
4.상제님이 밝히신 후천수도 용화동의 전모
후천수도와 조화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과정이 일체 생략된 특정교단의 가르침이 대세이며,단순히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성지 수순으로 격하시키고 있다.그러나 실리지 않는 이면적인 내용과 조화정부의 위치 자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나는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와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을 수도의 도성으로 삼나니, 한양보다 일곱배나 넓은 도성에서 문무백관이 정사를 보게 되리라. 부서 한 장이면 산 하나를 옮기리니 내세상에서는 서해로 땅을 넓히노라. 내가 거하는 대시국 수도의 북문은 전주에 세워지노라. 때가 되면 금산사는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 천지개벽경)
오성산은 만국 영사관 자리요, 서대문 팔십리는 저기 있는 계화도요, 평사리는 나의 평상이니라. (선도신정경)
위 내용을 보면 후천수도에 대한 구역과 위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금산사 사답칠두처럼 7개 지역의 기운을 받아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지역에 수도를 정하고 만국 영사관 자리는 오성산에 배치하고 수도의 서방인 서대문 지역은 계화도 방조제 지역에 설정하고,수도의 북방인 북문은 전북에 설정한다고 나온다.
방위가 틀리는 것은 개벽이후 지축 정립에 대한 예상까지 한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개벽이후 서해로 땅이 커진다고 보았을때 전주-군산지역으로 이동해야 중국과 한국 일본의 중심지로 부상한다고 판단한다.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고 하는 말과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長廣)이 팔십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전체적인 큰 그림을 다시 그려보면,금산사와 용화동 그리고 배후지 원평은 청와대와 정부청사 그리고 각종 관공서가 밀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이곳을 벗어나면 교육도시 시설인 용화도장구역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유학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알 수 있다.이 모든 것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배치된 것이며 여기에는 대전은 전혀 언급이 안될뿐 아니라 배후 위성도시 역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청풍명월금산사가 나오는 구절을 담고 있는 두 책을 비교해 보면 무슨 단서가 나올 것이다.
태전의 상징은 보천교 시절에 태을주 기운이 가득한 태을주밭으로 판단해야 하며 용화동 일대가 콩밭으로 보아야 한다.전봉준 장군의 노래로 알려진 파랑새와 녹두장군의 의미도 팔왕을 뜻하는 전주(八+王=全)이며 녹두장군의 별명도 콩(두-豆)을 의미한다.즉 태을주 기운이 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태을주 기운을 가진 사람이 사는 땅이 콩밭= 태을주밭= 태전
1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2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3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4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5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6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道典 5:306)
매양 구릿골 앞 큰 나무 밑에서 소풍하실 새, 금산안과 용화동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곳이 나의 기지라.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인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천황지황인황후(天皇地皇人皇後)천하지대금산사(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씀하시고, 또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 도술운통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라고
외우시고, 또 "세계유이차산출(世界有而此山出) 기운금천장물화(紀運金天藏物華)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를 외우시니라.(대순전경)
위 내용을 보면,제왕지기가 나올 땅이라고 말한 당시 지명이 어디일까?대순전경에서는 구릿골 앞이라고 나온다.구릿골 앞에서 보면 제비산이 있고 계룡봉이라는 지명지 존재한다.즉 제비산(帝妃山)은 황제의 왕비를 의미하기도 한다.후일 태모(천황후) 고수부님은 "증산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증 산 도 오시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오성산 봉웃재에 장사를 지냈고,이후 1961년에 제비산(帝妃山)중턱에 이장했다. 이 내용은 상제님 공사에도 나오는데 나갔던 제비는 황제의 왕비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고수부님의 장지 이장을 말한다.인신합덕은 아니지만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음양합덕이 된 셈이다.
5 하루는 제비산(帝妃山)을 바라보시며 “제비산에 배가 올라와야 일이 되느니라. 나갔던 제비가 다시들어오리라.” 하시고
6 말씀하시기를 “개벽은 기둥 하나 안고 도는 동안에 된다.” 하시니라.
7 하루는 상제님께서 “제비산에 대어 본다.” 하시며 성도들을 간짓대처럼 이어서 높이 세워 놓으시니라.
( 道典 7:70)
증산상제님은 먼 훗날 이곳에서 세계조화정부의 청와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공사를 보신다.제비산은 황제의 왕비가 나오는 의미도 있지만 <황제의 창업을 하는 계곡>을 뜻하는 의미를 실어 제업창곡 공사를 본 것이다.그러므로 제왕지지란 대전이 아닌 용화동과 금산사 일대를 의미한다.
9 말씀하시기를 “옛집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니라. 이곳은 제비창골이 아니요 제업창골(帝業創谷)이니라.”하시니라.
10 하루는 하운동에 사는 박성태(朴成台)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제비창골에 날마다 백 명씩은왕래하리라.” 하시고
11 “그러나 여지가 좋지 못하다.” 하시니라.
( 道典 3:13)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에서 나오는 오로봉은 어디를 말하는가? 태모(천황후) 고수부님이 세 교단을 마치고 마지막에 은거한 산을 의미한다.증산상제님은 천하의 아버지산인 회문산에서 오선위기(五仙圍碁)바둑판에 맞춰 단주수명 공사를 보았고,고수부님도 오성산(五聖山)에 바둑판을 묻어 오선위기의 기운을 오성산으로 옮기는 공사를 보았다.
오성산(五聖山)은 당나라 소정방에 저항하여 바둑을 두던 다섯명의 백제 노인들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의미에서,오성인(五聖人)이 묻혀있는 산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오성산 아래의 마을 이름이 요임금의 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성덕리(成德里)'라고 했고, 성덕리 주변을 서쪽에 있는 요임금 동네라는 뜻으로 '서요동(西堯洞)'이라고 불렀으며 서요동 모래언덕을 상제님의 다른 이름인'사옥(紗玉)재'라고 불렀다.
증산상제님은 후천의 요임금이라고 말씀하셨으며,당요가 사는 구역을 요동(堯洞)이라고 부른 것이다.용화동이 동요동이고 오성산이 서요동이며 이곳이 바로 후천 수도의 영역인 것이다.이 영역과 인연이 되는 내용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다.<오로봉전이십일>이 <오로봉전태전>으로 되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맞는다는 가정을 한다면,오선위기의 중심기운이 담긴 오로봉의 핵심이 <태을주 판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설마 오성산이 태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2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3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4 허미수(許眉?)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5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36)
위 내용을 보면,같은 곳에서 연이어 하는 말이 아니고 두가지 내용을 병합한 것을 알 수 있다.<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라는 의미는 <태을주판몰이>이 상황이고<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라는 것은 <후천선경의 푯대를 콩밭(태을주밭)>에 꽂았느니라가 맞는 표현이다.그리고 그 공사를 본 지명이 대전이 아닌 용화동이며 용화동에서 많은 신도들이 태을주 수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태을주밭인 것이다.그래서 이곳이 태을주밭이고 후천수도라고 한 것을 의미한다.당연히 새서울이라고 한 것은 현 서울이 아닌 전주중심의 용화동 콩밭(신앙의 근거지)을 의미한 것이다.
5.태모(천황후)님과 이상호.고민환 성도와 애기한 태전은 대전지명이 아니다.
1 태모님께서 용화동에 계실 때 천지에서 신도가 크게 내리매 여러 차례 용봉(龍鳳)을 그려 깃대에 매달아
놓으시고 공사를 행하시더니
2 용화동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 다시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두시고 이상호에게 이르시기를
3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고 “용봉기를 꼭 꽂아 두라.”
하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4 또 말씀하시기를 “용화동은 동요동(東堯洞)이요, 건곤(乾坤)의 사당(祠堂) 자리이니 미륵이 다시 서니라.
5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나니 법은 서울로부터 내려오는 것 아니더냐.
6 앞으로 태전(太田)이 서울이 되느니라.” 하시고
7 “사람 욕심 내지 마라. 올바른 줄 하나 치켜들면 다 오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1:365)
위 내용을 보면,이상호와 고수부님의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태전(太田)이 서울>이라는 말에서 본다면 태전이 대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용화동이 콩밭이자 태전이라고 애기한 것이다.만일, 대전지역이 서울이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대전으로 도장 살림을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사람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 연이어 나온다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서울로 가면 더 많은 사람을 포교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누그러 뜨리는 경고인 것이다.
용화동이 상제님이 말한 콩밭이자 후천 수도라는 것을 당부하면서 사람이 적어도 여기를 지키고 생활하라는 의미이다.그러나 이상호 이정립 형제는 고수부님의 말을 듣지 않고 해방이후 서울에서 증산교대법사(동화교 후신)을 차린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 욕심을 내어 용화동을 떠날 것을 암시한 것이다.
태전이 서울된다는 말은 용화동 태을주밭이 서울된다는 말임일 알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오고 간 것이다.만일 이상호가 대전이 서울된다고 알았다면 서울에서 본부를 두지 않고 대전으로 갔을 것이다.
1 이 해 8월 17일 초저녁에 고민환이 태모님의 산소 일로 홀로 번민하다가
2 문득 정신이 황홀하고 혼몽한 중에 심신(心神)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함열(咸悅)에 사는 연기종(延基宗)의
집에 도착하니
3 태모님께서 생존 시와 같이 손에 담뱃대를 들고 그 집 마당에 서 계시는지라
4 민환은 태모님께서 선화하신 후에 어떠한 영적 감화도 주지 않으심에 원망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불경한 언사로 “어찌하여 여기 와 계시오?” 하니
5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디를 못 가리오.” 하시며 “지명(地名)을 취하여 왔노라.” 하시니라.
6 이에 민환이 심사(心思)가 나서 말하기를 “그러면 저는 태전(太田) 갈라오.” 하니
7 태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얼굴로 말씀하시기를 “또 올 터인데 무얼.” 하시며 보이지 않으시니라.
( 道典 11:425)
위 내용을 보면,고민환 성도가 대전으로 간다는 말을 했다면 태전의 비밀을 대전으로 착각했다는 말이다.그리고 태모님이 <또 올 터인데 무얼>이러고 대답했다면 대전이 아닌 줄 알고 다시 올 것이라는 예언적 훈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예언서에 나온 이재전전을 대전으로 해석하고 대전이 태전일 것이라고 확대해서 해서 특정교단이 대전에서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상제님이 밝힌 태전은 지명이 아닐뿐 아니라,대전의 최초 옛지명이 대전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이 태전이 되어야 만 이유는 증산상제님이 밀한 콩밭이 태전으로 불리기 때문에 대전이 태전으로 되어야만 된다는 욕심에서 일어난 일이다.올바른 진법해석이 아닌 난법해석으로 인한 아집의 강행이다.이제는 상제님이 밝힌 용화동 후천수도도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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