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은 왜 암계룡을 택하셨을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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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견우직녀 (39.♡.58.141) 작성일15-08-25 18:45 조회6,162회 댓글5건본문
1편 끝에서 처럼 대동계로 인하여 기축옥사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대동계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선조가 왕위에 올라있을 당시 우리나라의 삼남지방은
극심한 왜구의 수탈로 인하여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고.몇년후엔 임진난리가 일어날 만큼 일본의 세력은
강성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정여립은 이퇴계 선생의 예안향약과 이율곡의 해주향약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태인고현향약을 만들어 지방을 보호하고자 대동계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사건을 보면 왜구가 쳐들어 왔을때 그것을 방어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이퇴계와 이율곡의 향약의 장점만을 지니고 있었던 대동계는
그 편리성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 강대한 세력을 두려워한 서인들은 평소 정여립이
자주 말하고 다닌 천하공물설과 하사비군론을
정감록의 도참설 목자망전읍흥(木子亡奠邑興) 과
정여립(鄭汝立) 정도령 너 일어서라 (너汝설立)로 인용해서 정여립과 동인들을 싸그리 숙청시키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동인 선비 1000여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 후 호남지방의 선비들이 조정에 출사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이 기축옥사 사건의 전말입니다.
기축옥사건으로 인하여 정감록이 대중적으로 유행을 타게 된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모악산의 정도령 관련이야기 인데, 사실 이것은 기존에 정론으로 굳어져 가는 충청도 계룡산 정도령 이야기 보다는 유명하진 않습니다.
충청도 계룡산(이하 계룡산)에는 여러가지 정도령 관련 설화가 전해지는데 그중 한 일화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먼 옛날 이나라 임금은 백성들을 돌볼 생각은 안하고 주색과 도탄에 빠져 있어
백성들은 굶주리고 도적들은 들끓고 하여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옥황상제가 세상을 내려다 보니 매우 혼란스럽기에 물으니
대답하기를 위와 같다 하니 그럼 세상을 구제하고 5만년 태평성대를 이어갈 방법이 없는고?
하고 물으니....
계룡산 신도안 에 정도령 이란 사람이 후덕하여 만 백성이 우러러 보고 따른다고 아뢰니
그럼 계룡산 에 단을 쌓고 천일 기도를 하면 내 세상을 다스릴 비법을 전해 줄 것이라 이르니
신하가 신도안의 정도령을 찾아가 옥황상제의 옥음을 전하니 만백성이 기뻐 하였다.
정도령은 좌우에서 보필하는 두 신하를 데리고 계룡산 천황봉에 단을 쌓고 천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정도령이 천황봉에 올라 기도를 드리면 두 신하는 하늘문 앞 문다래미 앞에 무릎을 꿇고 같이 기도를 드렸다.
이 두신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니 정도령의 5만년 태평성대 세상이 열리면 정혼하기로 하였다.
999일의 기도를 마치고 하루만 더 기도를 마치면 정도령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할 비법을 옥황상제에서 전달 받기로 한것인데 ...
정도령이 장차 옥황상제의 자리를 탐한다는 간신들의 거짓 간언에 옥황상제가 진노하여 이르니...
정도령이란 작자는 돌이 되고..
두 년놈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 나지 못하도록 동물이 되라 이르니 만백성의 피눈물이 흘러..
숫용추를 만들고...
암용추를 만드니...
이 어찌 원통하고 애석하지 않으리....
위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계룡산 정도령의 설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의 정도령은 원래 신도안이란 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서 천일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 후 999일째 되는 날 옥황상제위를 침범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돌이 되어버리지요.
여기서 특기할 점은 상제의 위를 찬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즉 5만년 천자의 위도 부족해서 자신이 옥황상제가 되길 바랬다는 거죠.
위의 내용이 바로 충청도 계룡산의 정도령 설화입니다.
위 내용을 살펴보면 상제님께서 왜. 모악산 암계룡을
선택하시고
시속에 그른 일 하는 자를 ‘방정(訪鄭)맞다.’ 이르고, 옳은 일 하는 자를 ‘내정(來鄭)이 있다.’ 이르느니라.
라는 말씀 까지 하시며 방정맞은 계룡산을 버리시고
옳은 일을하는. 불의를 밝히는 내정 기운을 취하셨는지 충분히 짐작 하시리라 봅니다.
여러분.
모악산의 정도령과 충청도 계룡산의 정도령은 사상이 정 반대입니다.
5만년 만승천자를 넘어 상제지위를 꿈꾸는.
철저한 계급 사회를 지향하는 계룡산을 상제님은 절대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대동세계를 꿈꾸고 덕있는자에게서 덕있는 자로 그 위를 계승하는.
모든사람들이 누구나 왕이 되고 장상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만민 평등의 모악산을 택하신 것 입니다.
급하게 글을 쓰느라 두서가 없네요.
적고싶은 얘기의 10퍼센트도 못적은것 같습니다.
언젠간 할 날이 있겠죠.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견우직녀님의 댓글
견우직녀 아이피 39.♡.58.141 작성일
빠진게 있어 적습니다.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할 당시에 모악산에서 공부를 하며
대동계를 조직했습니다.
제비봉 아래에서 공부를 할 당시의 정여립을 사람들은 죽도선생
이라고 불렸습니다.
망치님의 댓글
망치 아이피 172.♡.17.41 작성일정여립님이 대동계를 잘 운영했었는데 대동계가 성공했다면 조선 시대 전반적으로 백성들의 삶의질이 아주 좋아 졌을 것같습니다.
방천화극님의 댓글
방천화극 아이피 175.♡.148.151 작성일
충청도 계룡산은
난법해원 도수로 쓰시고 있는 거죠
대전을 기반으로하는 모단체가
선천 상극의 도 로써 해원의 막바지에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 해원판은 근처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애맨 놈 벼락맞는다고 더러운 살기가 퍼져
나오거 든요..
뮤탄트님의 댓글
뮤탄트 아이피 188.♡.109.45 작성일
정여립은 영국에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최초로 입헌주의를 확립한 올리버 크롬웰과 종종 비교되는 인물이며, '동양 최초의 공화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요.
올리버 크롬웰이 정여립보다 50년 늦게 태어났습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만일 정여립이 성공하여 그의 이상이 조선에서 실현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서양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겠지요.
(아주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우리나라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서양의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역사하셨다는 진묵대사도 이 시기의 인물인 것으로 보면
어쩌면 이 시기에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정적님의 댓글
정적 아이피 172.♡.17.41 작성일
황극제는 옥황상제님을 능가하는것처럼이야기를 하지요.
인사문제는 황극제가... 옥황상제님도 어쩌지를 못하지 하면서 무시하고 아래로 깔보고 있는
사람같지않는 황극제의 심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