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은 왜 암계룡을 택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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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견우직녀 (39.♡.58.141) 작성일15-08-25 16:30 조회6,303회 댓글2건본문
우선 이것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틀린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비난은 사양하지만 비판은 사랑합니다!^^
경전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성구가 있습니다.
1 성도들이 계룡산(鷄龍山) 정씨 왕국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2 “일본 사람이 모든 섬과 산을 샅샅이 뒤지고 물밑까지 더듬어 보았나니
3 정씨가 몸 붙여 일 벌일 곳이 어디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릴지어다.” 하시고
4 “속담에 ‘정가를 방문하면 방정(訪鄭)맞다.’ 하고, 또 사리가 밝으면 ‘내정(來鄭)이 있다.’ 하나니
5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 하시니라.
6 또 말씀하시기를 “계룡산은 수계룡이요 모악산은 암계룡이라. 나는 암계룡을 택하였노라.” 하시니라.
바로 암계룡을 택하셨다는 말씀이지요.
이 암계룡을 택했다는 말씀을 하신건 정도령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데, 정도령 사상은
꽤나 오래된 도참설중의 하나입니다.
정도령 사상이 생기기 시작한 연원은 정감록 이라는 설도 있고 주역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정작 정도령 사상을 대중화 시킨 장본인은
바로 정여립 장군입니다.
정여립 장군은 양반가문에 태어나 37세때까지 무난한 입신양명의 길을 걷게 되는데
선조17년 수찬의 벼슬에 오른뒤 당파를 바꿈으로 인하여 선조의 미움을 사서
낙향을 하게 됩니다.
그 뒤 정여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비산 아래에서 학문을 하며 대동계를 조직하게 되는데
대동계는 대동세계를 꿈꾸던 정여립 장군의
정치사상이 들어있습니다.
평소 정여립 장군은 천하공물설(천하는 공동의 물건으로써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와
하사비군론(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겠는가)을
내세우며 혈통에 근거한 왕위 계승의 절대성을 비판하고 왕의 자격을 중시하였고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현(聖賢)의 통론(通論)이 아니었다”며
주자학적인 ‘불사이군론(不事二君論)’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혁신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은 당시 학자들이 보기에는 극히 위험한 사상으로 보여졌으며
이 것으로 인하여 지금의 현대 사회에서 전라도와 호남지방이 배척받는
기축옥사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1편 끝.
비난은 사양하지만 비판은 사랑합니다!^^
경전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성구가 있습니다.
1 성도들이 계룡산(鷄龍山) 정씨 왕국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2 “일본 사람이 모든 섬과 산을 샅샅이 뒤지고 물밑까지 더듬어 보았나니
3 정씨가 몸 붙여 일 벌일 곳이 어디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릴지어다.” 하시고
4 “속담에 ‘정가를 방문하면 방정(訪鄭)맞다.’ 하고, 또 사리가 밝으면 ‘내정(來鄭)이 있다.’ 하나니
5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 하시니라.
6 또 말씀하시기를 “계룡산은 수계룡이요 모악산은 암계룡이라. 나는 암계룡을 택하였노라.” 하시니라.
바로 암계룡을 택하셨다는 말씀이지요.
이 암계룡을 택했다는 말씀을 하신건 정도령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데, 정도령 사상은
꽤나 오래된 도참설중의 하나입니다.
정도령 사상이 생기기 시작한 연원은 정감록 이라는 설도 있고 주역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정작 정도령 사상을 대중화 시킨 장본인은
바로 정여립 장군입니다.
정여립 장군은 양반가문에 태어나 37세때까지 무난한 입신양명의 길을 걷게 되는데
선조17년 수찬의 벼슬에 오른뒤 당파를 바꿈으로 인하여 선조의 미움을 사서
낙향을 하게 됩니다.
그 뒤 정여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비산 아래에서 학문을 하며 대동계를 조직하게 되는데
대동계는 대동세계를 꿈꾸던 정여립 장군의
정치사상이 들어있습니다.
평소 정여립 장군은 천하공물설(천하는 공동의 물건으로써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와
하사비군론(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겠는가)을
내세우며 혈통에 근거한 왕위 계승의 절대성을 비판하고 왕의 자격을 중시하였고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현(聖賢)의 통론(通論)이 아니었다”며
주자학적인 ‘불사이군론(不事二君論)’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혁신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은 당시 학자들이 보기에는 극히 위험한 사상으로 보여졌으며
이 것으로 인하여 지금의 현대 사회에서 전라도와 호남지방이 배척받는
기축옥사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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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여기까지왓는데님의 댓글
여기까지왓는데 아이피 175.♡.22.150 작성일
난세에 영웅난다고 선조시대에는 정말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의 권력에 정점에는 선조가 있었습니다.
선조가 틀어막고 결재를 안해주는데 유교적인 분위기에서는 그 분들이라해도 용빼는 재주가 없었을 겁니다.
광해군만 해도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지도자를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가 흥망성쇠의 키입니다.
다만 정여립이라는 다혈질 材木은 순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감록이라는 도참을 이용한 부문은 순수성에 결여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적님의 댓글
정적 아이피 172.♡.17.41 작성일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견우직녀님께서는 구슬을 참 잘 꿰는것 같습니다.
주옥같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정리 잘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