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증산 법종교에 전해진 상제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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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태성 작성일14-02-20 17:56 조회7,900회 댓글3건본문
상제님 유서에 대한 저의 생각[1]
신비전 13-08-12 21:05 조회544회 댓글2건
화은당 실기에는 상제님의 유서(遺書)가 실려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것은 1909년이고(당시 화은당 강순임 여사의 나이 6살) 그 유서가 화은당 선사에게 전달된 것이 1947(병술)년 음력 4월 8일의 일입니다.
비록 시간과 공간의 갭이 있다 할지라도 상제님께서 따님이신 화은당 선사의 교단에 주신 글이라면, 글의 성격상 유서라는 표현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서(遺書)란 돌아가시는 고인의 유언(遺言)을 적은 글이며, 그것은 보통 혈통에게 주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래 전해진 글에는 유서라는 제목은 쓰여 있지 않고 본문 글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효진 선생 같으신 분은 유서라는 제목이 아니라 단주수명서 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지은 저서(대성경집)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서 천명을 내린 단주에게 주는 글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단주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천상의 단주와 천지공사를 인사로 실현하는 인사의 주인공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상제님의 유서라는 표현에 대해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서란 1947년에 증산 법종교에 전해진 한통의 짧은 글만이 아니라, 상제님께서 남기신 모든 천지공사 기록, 모든 문명(文明)이 유서라는 생각입니다. 증산천사공사기(1926년)를 비롯하여, 대순전경 초판(1929년)을 뿌리로 하는 모든 상제님의 기록은, 상제님께서 인류에게 남기신 유서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1947년 증산법종교에 전해진 상제님의 유서는 상제님이 인류에서 내려주신 여러 문명 중에 하나로써 꼭 법종교에만 해당하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화은당 실기를 소개하는 동영상강의 말미에 왜 상제님에게는 3분의 여성이 계셨고, 그 분들은 각각 어떤 사명이 있으신가 하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주장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상제님의 반려자 되시는 수부님은 오직 한분 고수부님이십니다. 상제님은 고수부님에게 종통을 전하셨습니다. 고수부님은 수부사명을 맡아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제님은 정씨 성모님과 김형렬 성도님의 따님(김수부님)에게도 각각 다른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혈통맥, 법통맥, 종통맥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혈통맥에 전하신 사명을 따라 화은당 강순임 선사님께서는 상제님과 정씨성모님의 체백을 수양산 자락 오리알터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지난 100년 교운사에 등장하는 상제님의 모든 교단은 천지공사의 과정에서 다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의 교운공사는 뿌리교단 시대(생), 줄기교단 시대(장), 그리고 지엽교단 시대(성)로 갑니다. 그리고 결국 지엽에 가서 꽃피고 열매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운의 시작단계나 중간단계의 어느 교단이 종통 혹은 종가집이라는 생각 보다는 궁극에 가서 상제님과 수부님의 참 진리와 참 신앙을 드러내고, 천하 만민이 상제님과 수부님을 신앙하게 만드는 그 모임, 상제님의 의통성업을 이루는 그 최종 모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때 제가 몸담던 곳만이 종통이고 올바르며, 나머지 교단은 다 난법 교단이라는 시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법종교에 대해서도 잘못된 시각을 가졌습니다. 상제님의 체백도 아닌데 묘소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그릇된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용화동 증산교에 대해서는 한국동란 직후 능력있는 젊은 일꾼을 쫓아낸, 불의하고 배은망덕한 구시대의 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생각은 후일 여지없이 부서지고 맙니다. 30년 동안 그러한 신앙관속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언젠가 27년 헛도수라는 개념이 제 머릿속에 새로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저는 시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과거 우물안 개구리의 시각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신앙역사 모든 교단은 다 상제님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풍류주세백년진의 진(塵)이라는 말씀이 암시하듯 참법 보다는 난법적인 요소가 다소 더 많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교단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어떤 교단은 시한부 종말론, 반복해서 수정되는 개벽설, 가정파탄. 경제 파탄, 인생부적응자 생산, 인생파탄 등등의 물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제님 교단은 다 상제님의 필요에 의해서 상제님의 천명을 하나씩 받아서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찬찬히 따져보면 교단 나름으로 특수한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중시하고 이것에 높은 의미를 둡니다. 후일 상제님 진리의 참을 추구하는 교단은 이것을 종합,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거에 몸담았던 교단은 정말 상제님 진리의 기초적인 교리 정립과 체계적인 진리 정립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방송을 통한 상제님 진리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유일한 교단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어떤가요? 대한 사회에 다수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지어 크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교단도 이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증산법종교에는 상제님께서 사용하셨던 밥그릇과 수저, 세수 대야, 그리고 상제님의 인장(도장), 상제님의 증명사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제님께서 남기신 모든 것이 소중하지만 특히 상제님의 체백과 사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산참신앙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상제님의 사진을 원본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용화동 증산교는 상제님과 수부님의 성언과 성적을 최초로 문자화하여 인류로 하여금 상제님과 수부님을 신앙하는 근본을 확립하였으며, 상제님께서 전하신 의통을 전수받아 이를 다시 후세에 전하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증산참신앙은 기존 교단의 남긴 참법적인 요소는 반드시 찾아내어 승계하고 이를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교운역사에서 그 시대 시대 상제님 신앙을 계승해서 이를 꽃피우며, 가꾸어온 모든 선배 신앙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침햇살님의 댓글
아침햇살13-08-13 15:38
증산참신앙이 시루와 같은 역할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근데 큰 두 단체 말고 다른 종단들에 대해선 맛보기만 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쉽네요~^^;
노들님의 댓글
노들 13-08-13 17:15
만인의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서는 오직 천지공사 뿐이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목록
견마지로님의 댓글
견마지로 작성일다시 글을 보니까 새롭습니다.
불가지님의 댓글
불가지 작성일
유서에 뭔가 담겨 있을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실력이 짧아서 해석은 다른 분들이 한것을 참고해야죠~
증산신학님의 댓글
증산신학 작성일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